필자는 서양의 명장으로 알렉산더, 한니발, 스키피오, 나폴레옹, 클라우제비츠, 몰트케, 구데리안, 롬멜, 패튼을 선정하였다. 이러한 인물 선정에는 우선 명장의 특성 즉 장수된 자질이라는 요소가 우선 고려되었고, 다음에는 명장이 구사한 특별하거나 창의적인 전술과 전략 여부를 고려하였다. 그 다음에는 그가 전장에서 이룬 성과가 얼마나 위대한 것이었느냐를 고려하였고, 마지막으로 그의 업적이 후세에 미친 영향을 고려하였다.
알렉산더는 고대에 가장 큰 제국을 건설한 정복왕이다. 그는 꿈이 있었다. 코스모폴리탄(4해동포)의 세계를 건설하는 것이다. 그 꿈을 달성하려고 10년간의 정복 전쟁에 나선 것이다.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무인으로써의 재능, 아리스토텔레스로부터 3년간 개인 교습을 통해 받은 문인으로써의 자질은 그로 하여금 문무의 자질을 겸비하게 하였다. 그의 절대병기는 마케도니아 팔랑스였다. 그의 전술의 백미는 정방형 팔랑스에 사선으로 변화를 주는 소위 ‘사선전법’이었다. 정복 전쟁은 10년만에 끝났으나 그가 뿌린 헤레니즘 문명은 300년을 지속하였다.
한니발은 17년간 로마를 괴롭혔다. 3 만여 명에 불과한 병력으로 70만을 동원 할 잠재력을 가진 로마를 멸망 직전까지로 몰아부쳤다. 그가 스키피오에 밀려 로마를 떠날 때 남겨진 부하들은 눈물로 그를 전송하였다. 한니발은 부하들의 마음을 얻었다. 생사고락을 같이하며 이심전심으로 통하였다. 스피키오는 한니발에게서 배워 한니발을 물리쳤다. 한니발의 전략은 간접접근 전략이었다. 로마의 잠재력을 최대로 활용하는 지구전 전략이었다. 스키피오는 카르타고와 다툰 지중해의 패권을 공고히 하여 “아프리카노”라고 불리면서 팍스로마나 시대를 열었다.
나폴레옹은 군신(god of war))으로 추앙받는 군주이자 장군이었다. 근 100년 절대 왕정 시대를 지배한 제한전 사조를 넘어서 전장에서 결정성을 추구하였다. ‘소모가 아니라 섬멸’을 추구한 것이다. 국민군 제도, 징병제를 통해 현대전의 모델을 제시하였다. 클라우제비츠는 나폴레옹을 군신이라 불렀다. 나폴레옹 전쟁에 직접 참전한 경험을 가지고 전쟁의 본질을 탐구하는 전쟁 사상가가 되었다. 전쟁론이 바로 그 책이다. 이를 통해 현대전 이론의 아버지 반열에 오른다. 몰트케는 독일통일의 주역이다. 클라우제비츠의 수제자로 섬멸전 이론을 정립하였다. 무명의 일반참모부장에 임명되어 보오, 보불전쟁을 승리로 이끌어 독일통일의 위업을 달성하였다. 일반참모부를 ‘국가 안에 국가’로 성장시키고, 전쟁론의 핵심인 절대전-현실전 이론에서 포위섬멸을 기본으로 하는 섬멸전 전술을 발전시킨다. 이 전술은 현대전 교리의 바탕이 되었다.
구데리안은 전격전의 창시자다. 그는 전형적인 독일인의 특성을 가진 직업 군인이었다. 그는 오직 군인이라는 직업에 전념한 장인이었다. 히틀러에게 “예 아니오”를 분명하게 할 수 있는 몇 명 안되는 독일 장군 중위 하나였다. 양차 대전 중간 기간 통신부대, 수송부대 근무 경험을 바탕으로 기갑부대 창설에 앞장선다. 최초의 기갑군단장이 되어 전격전의 신화를 쓴다. 그는 이론을 만들고, 그 이론에 따라 부대를 창설한 후 그 부대로 전투를 하여 승리를 한 보기 드문 행운을 가진 군인이었다. 롬멜은 구데리안과 쌍벽을 이룬 전격전의 주역이었다. 1차세계대전 때부터 군사적 천재의 면모를 보여주었다. 마타주르 전투는 그의 상징있다. 2차세계대전 시 7기갑사단을 이끌고 아르덴느-디낭-아라스 방향으로 실시한 전격적인 기동전은 단지 마타주르 산악 전투의 확대 재판일 뿐이었다. 발이 아니라 전차로 침투하였다. 그러나 그는 아프리카, 노르만디에서 병참의 한계에 패장의 길을 걸을 수밖에 없었다. 병참은 그의 손 밖에 있는 것이었다. 패튼은 미국의 장병을 군인으로 변화시킨 선각자였다. 원칙중심, 군기론자인 패튼은 민주시민을 군인으로 변화시켰다. 험하고 원색적인 그의 언행은 민주적 시민인 병사를 군인으로 만들어 사지에서 한목숨이라도 더 구하려는 것이었다. 벌지 전투에서 그가 보여준 리더십은 롬멜에 버금가는 것이었다. 롬멜은 작전에는 달인이었으나 병참의 제한으로 패장이되었다. 그러나 패튼은 병참의 제한에서 벗어나 마음껏 작전을 구사한 행운아 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