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는 손대지 않은 월 순을 따른다.
그리고 그곳엔 하루가 다르게 변화했던 내가 있다.
10월에는 뚜렷한 목적의식이나 전하고자 하는 이야기가 없다. 그저 시가 멋져 보여 펜을 쥐어 잡은 어린아이가 있을 뿐이다. 11월에 들어서 성찰이란 단어가 주제로써 고개를 들기 시작한다. 꽤 정독한 책들이 쌓임에 따라 지닌 악에 대해 부끄러워하는 마음이 점차 폭을 넓히고 있었기 때문이다. 12월에는 부끄러움이 그 과실을 맺어 남과 나를 비교하여 살아오던 아이를 나와 나를 비교하며 노력하는 청년으로 키운다. 아마도 그건 지식을 기반으로 한 실천과 이해를 기본으로 한 실천의 차이였을 것이다. 1월과 2월에 나는 비로소 자신을 포함해 많은 사람을 용서한다.
미운 사람이란 단어가 모습을 감추니 신비하게도 일몰 뒤에 월출처럼 일상에 관한 시들이 발아했다. 초겨울이 주는 건조한 수분은 헌책과 맞닿아 그럴싸한 향기를 냈는데 어쩌면 나는 그것으로부터 게슴츠레 시인을 꿈꾸지 않았을까 싶다. 백지를 꾸미거나 혀를 놀리지 않아도 삶의 분위기를 통해 시인을 자칭할 수 있게 됐으면 한다는 바램을, 모서리에 안착하는 민들레 홀씨와 같이 어쩔 수 없는 마음으로 들이게 된 것이다.
시집에 수록된 시들은 선로이다. 책의 이면에서 우두커니 기다리고 있는 역으로 당신을 이끌 과정에 불가하다. 다만 그것들이 나와 당신의 소소한 산책을 조금이나마 덜 지루하게 꾸며주기를 바랄 뿐이다.
한편 역이란 시집의 끝자락에 있는 ‘두고 가는 말’로,
몇 명에게 몇 번을 전하든 진심이 닳지 않을 영원한 나의 소원이며
결론적으로는 고리타분하게
또 사랑을 노래하는 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