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대부분을 재외국민으로 살아왔다. 정착보다는 이동이 익숙했고, 한 곳에 머물기보다는 끊임없이 떠돌았다. 한국어, 일본어, 영어, 중국어?네 개의 언어를 자유롭게 구사했지만, 그만큼 내가 속한 세계는 늘 유동적이었다. 언어가 많아질수록 소통할 수 있는 대상은 늘어났지만, 정작 내 마음을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은 점점 줄어드는 것만 같았다.
세상에 본격적으로 발을 들여놓고 보니, 어느새 나는 네 종류의 정신 질환을 진단받은 환자가 되어 있었다. 나는 언제부터 아팠던 걸까. 국경을 넘을 때마다, 새로운 환경에 적응할 때마다, 나도 모르게 조금씩 스스로를 잃어왔던 걸까. 언어가 많을수록 사고의 폭이 넓어진다고들 하지만, 그만큼 정체성은 흐릿해졌다. 내가 누구인지 설명하는 문장은 많아졌지만, 그 문장들은 조각난 퍼즐처럼 어딘가 맞지 않는 느낌이었다.
이 모든 여정의 끝에, 나는 나라는 사람을 사랑할 수 있기를 바란다. 어디에도 속하지 못한 채 떠돌았던 시간들이 결국 나를 위한 것이었기를, 그 길 끝에서 나 자신을 온전히 받아들일 수 있기를. 그래서 지금, 이곳에 잠시 머물며 내 흔적을 남긴다. 기억을 기록하며, 나라는 존재를 잃지 않기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