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 쓰면서
-또 다른‘젊은 나’꿈꾸며-
사람은 자기만의 마음의 색을 지니고 있다. 다만, 그 색은 누가 만든 게 아니라 자연의 색이 은연중에 마음속으로 들어와서 색을 칠한 것이다. 그렇기에 인간의 색깔은 자연은 물론 마음의 색깔까지 오롯이 담겨 있어 저절로 동화가 된다.
생태계는 조화로움을 통해 건강해진다. 어느 한 부분이 건강해진다는 것은 전체가 건강해지는 것임을 알아야 한다. 생태계는 독립적인 한 종(種)만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남·여 간의 사랑도 마찬가지다. 여성이 강해진다고 해서 남성이 위축되는 것은 아니다. 조화를 통해 전체가 성장하는 것이다.
우리는 살면서 무수한 연애담을 접한다. 피상적이고 도구적이며 때로는 감정에 매여 휘청이는 사람들의 연애를 보고 듣노라면 연애야말로 20∼30대의 가장 정치적이고 경제적인 문제가 아닐까 싶다. 젊은 세대의 물적 조건과 가장 민감하게 묶여 있는 영역, 섬세한 정치가 작동하는 관계. 그것이 연애가 아니고 무엇일까. 연애가 중요하지 않다면 술과 담배의 판매량이 줄어들고 사랑 노래는 의미를 잃을 것이다. 먹고 사는 문제가 걸려 있다. 또 어떤 이에게는 죽고 사는 문제이기도 한다. 연애는 현실과 밀착한 실용적인 문제이자 신자유주의, 자본주의, 세대론, 이데올로기, 페미니즘, 근대성과 탈근대성 같은 묵직한 개념과 이론으로도 접근 가능한 주제다.
요즘 사랑에 뛰어든 청년들을 보면 젊은 날의 나를 보는 것 같다. 나는 이들에게 이런 얘기를 해주고 싶다. 지금껏 우리가 배워 온 이분법적 사고에서 벗어나 다양한 색깔로 세상을 보아라. 나와 다른 사람과 사고가 존재하는 것이지, 그것이 틀림은 아니다.
신은 내게 왜 이렇게 가혹한 운명을 예비한 걸까? 그분이 바라는 것은 도대체 무엇인가. 파우스트는 무너지는 가슴을 부축하고 걷고 또 걸었다. 파우스트는 인간과 자연에 대한 오랜 연구 끝에 삶에는 두 가지 길이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하나는 눈으로 보고 이득을 따지며 평범하게 사는 길이고, 다른 하나는 눈으로는 볼 수 없고 이득도 따질 수 없지만 신의 가호 속에서 영광되게 사는 길이었다. 파우스트는 곰곰이 궁리하다가 후자를 택했다. 파란만장 하더라도 더 큰 자유로 나가고 싶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 길은 예측할 수 없는 고통으로 가득 차 있었다. 하지만 파우스트(Faust)는 그레첸(Gretchen)의 영혼의 사랑으로 승화시켰다.
항상 호기심을 가져라. 책을 통해 상상력을 키워라. 어제와 똑같이 생각하고 행동하면서 내일은 더 나아질 것이라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오늘은 어제와 다르게 생각하고 행동하도록 노력하는 것, 그것이 중요하다.
부정하는 것보다 긍정하는 법을 배워라. 생각이 말이 되고 말이 행동이 된다. 스쳐 지나는 사람, 꽃, 날씨 하나에도 호기심과 경이로움을 멈추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경이로움은 주변에 대한 사랑을 만든다. 미래는 예측할 수 없지만 그래도 만들어가는 것이다.
글을 쓴다는 건 어떤 직업을 갖든 필수적으로 지녀야 할 기본소양이다. 글쓰기에 자신이 없다면 자신 의견을 설득력 있게 표현할 수 없다는 얘기다. 하물며 그것이 오랜 기간 교직 밥을 먹어 온 교사라면 두말할 나위 없다.
솔직히 글을 쓴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니다. 어휘는 물론이고 맞춤법과 문맥에 이르기까지 늘 신경을 곤두세워야 한다. 더구나 신문의 사설이나 칼럼 등은 눈앞의 현안과 이슈에 대한 깊이와 통찰을 필요로 한다. 문장 하나를 쓰더라도 머릿속 창고에서 최적의 표현을 찾아내는 작업이 녹록지 않다. 그러니 글을 쓰는 과정서 늘 심리적 압박에 휘달리기 일쑤다. 잘 써지지 않을 땐 몇 줄의 진척도 없이 글은 천리 밖으로 달아나고 만다. 심지어 마감에 쫓겨 전전긍긍하는 꿈에 부대끼는 것도 숱하다.
또한 글을 쓸 땐 사람들에게 좋은 영향을 주고, 생각할 거리를 주자는 마음이었다. 현업서 뛸 때 나름 절제한다고 했지만 본의 아니게 비판의 칼을 휘둘렀을 수 있다. 당사자들에게 상처가 됐을 수 있기에 회한으로 다가온다.
100세 시대라는데 그저 반갑지만은 않다. 나이 육십이 되고 보니 항산(恒産)은 불안정해지고 고뇌는 깊어진다. 은퇴 시점을 종착역으로 받아들여야 할지, 이모작을 시작하는 출발점으로 잡을 것인지는 오롯이 나의 몫일 터다.
돌이켜 보면 20대 후반 패기 하나로 홀로 섰다. 이순(耳順)이 된 지금은 마음을 나눌 내 편이 곳곳에 포진해 있지 않은가. 이쯤에서 만절(晩節)이라는 말을 반추해 본다. 나이 들어서도 절개를 잃지 않고 더욱 소중히 여긴다는 그 의미를 가슴속에 새긴다.
정년 후 오늘 십 년 동안 습작해 온 글을 끝으로 펜을 내려놓고 사랑 이야기로 『사랑의 발견 2』를 출판하였다. 하지만 부족한 점이 많아 수정·보완하여『영혼(靈魂)의 일치를 느끼게 해준 여인』으로 독자들에게 선을 보이게 되었다.
우리가 인생을 살면서 반드시 거쳐야 할 바로 그 길목에서 마주쳐야 하는 사랑, 그곳을 지나면서 느낀 작은 생각들을 모은 것입니다. 길의 중요한 통로가 되는 그곳을 지나려면 그때마다 풀어야만 하는 난제들이 기다리는 법. 넓은 길에서 좁은 길로 들어서는 첫머리에 도달할 때마다 정말이지 많은 인연과 도움, 그리고 은혜 덕에 기적처럼 희망과 행복을 얻게 되었습니다.
난 한 여인을 사랑하게 되었다. 소위‘영혼(靈魂, 육체 속에 깃들어 생명을 부여하고 마음을 움직인다고 여겨지는 무형의 실체)의 일치를 느끼게 해준 여인’이라고 명명(命名)하면서, 춘매(春梅)가 순수한 사랑으로 예쁜 꽃을 피우기를 기다리는 마음으로…….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합니다. 내 일생 최대의 행운이 있다면 당신을 만난 것이요. 내 일생 가장 고마운 사람이 있다면 바로 당신이기 때문입니다.
이 책은 연애 비법서나 자기 계발서가 아니다. 어떻게 이성을 유혹하고 대처하라는 귓속말 코칭을 해 주지 않는다. ‘내 연애는 왜 늘 망할까’,‘왜 나 빼고 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