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 쓰면서
올해로 중·고등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다가 퇴직하고 글쓰기를 시작한 지 14년이 된다. 그간 겪었던 많은 변화와 어려움을 돌아보면서 나는 왜 이 길을 가고 있는가, 이 길에 어떤 의미가 있는가를 생각해 본다.
생태계는 조화로움을 통해 건강해진다. 어느 한 부분이 건강해진다는 것은 전체가 건강해지는 것임을 알아야 한다. 생태계는 독립적인 한 종(種)만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남녀의 사랑도 마찬가지다. 여성이 강해진다고 해서 남성이 위축되는 것은 아니다. 조화를 통해 전체가 성장하는 것이다.
우리는 살면서 무수한 연애담을 접한다. 피상적이고 도구적이며 때로는 감정에 매여 휘청이는 사람들의 연애를 보고 듣노라면 연애야말로 20∼30대의 가장 정치적이고 경제적인 문제가 아닐까 싶다. 젊은 세대의 물적 조건과 가장 민감하게 묶여 있는 영역, 섬세한 정치가 작동하는 관계. 그것이 연애가 아니고 무엇일까. 연애가 중요하지 않다면 술과 담배의 판매량이 줄어들고 사랑 노래는 의미를 잃을 것이다. 먹고 사는 문제가 걸려 있다. 또 어떤 이에게는 죽고 사는 문제이기도 하다. 연애는 현실과 밀착한 실용적인 문제이자 신자유주의, 자본주의, 세대론, 이데올로기, 페미니즘, 근대성과 탈근대성 같은 묵직한 개념과 이론으로도 접근 가능한 주제다.
요즘 사랑에 뛰어든 청년들을 보면 젊은 날의 나를 보는 것 같다. 나는 이들에게 이런 얘기를 해주고 싶다. 지금껏 우리가 배워 온 이분법적 사고에서 벗어나 다양한 색깔로 세상을 보아라. 나와 다른 사람과 사고가 존재하는 것이지, 그것이 틀림은 아니다. 자기에게는 관대하고 남에게는 가혹한 것이 인간 심리의 기본인 이기심이다. 그게 대표적으로 두드러진 것이 외도 심리다. 내가 하면 아름다운 로맨스(romance)가, 상대가 하면 파렴치한 불륜이고…….
나는 외도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 생각한다. 예수님은 마음으로 간음(姦淫)하는 것도 간음이라 했지만, 인간이 마음으로 간음하지 않으려면 더욱 오랜 진화를 겪어야 한다. 지금까지의 문명의 진화로는 외도의 강한 본능적 러시(ush)를 막을 수 없다. 외도를 좀 더 자유로워지려는 우주의 본능과 자기 씨를 많이 부리고 좋은 유전자를 받으려는 생명의 본능이 역사로서는 그 강한 에너지(energy)의 관성을 막을 수 없다. 그렇다고 방치만 했다가는 인간으로서의 삶이 무너지기 때문에 더욱 슬기로운 지혜가 요구된다.
“인간은 배를 채우고 어느 정도 입을 옷을 갖게 되면 그 다음으로 성애(性愛)를 생각하게 된다.”일찍이 공자가 한 말이다. 그렇지만 굶주리고 헐벗은 사람들 역시 머릿속에 오로지 그 생각만 갖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그러니 어찌 질문하지 않을 수 있을까. 한국 사회에서 연애란 어떤 의미인가? 왜 연애하지 못해 안달인가? 혹은 왜 안 하려고 애쓰는가? 답을 찾기 위해 과거와 먹고사는 생존의 문제를 로맨스(romance) 위에 얹어 넣은 오늘의 연애 정경(情景)을 관찰하고, 그 안의 정경(政經)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이 책은 연애 비법서나 자기 계발서가 아니다. 어떻게 이성을 유혹하고 대처하라는 귓속말 코칭을 해 주지 않는다. ‘내 연애는 왜 늘 망할까’,‘왜 나 빼고 다 연애를 할까’,‘우리 관계가 이래도 괜찮을까’,‘결혼할 수 있을까’,이런 고민을 하는 수많은 로맨스 주체 중 하나일 당신에게 지리멸멸한 현실을 새롭게 조망하고 스스로의 연애를 되돌아볼 수 있는 시간을 제공하고 싶다. 로맨틱 코미디라는 프리즘을 통해서, 신자유주의라는 거시적인 프레임과 감정이라는 미시적인 프레임을 통해서 나의 연애를 옥죄는 사회적 조건과 이데올로기를 발견하고 나만의 고유한 로맨스를 고민할 수 있기를 바란다.
항상 호기심을 가져라. 책을 통해 상상력을 키워라. 어제와 똑같이 생각하고 행동하면서 내일은 더 나아질 것이라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오늘은 어제와 다르게 생각하고 행동하도록 노력하는 것, 그것이 중요하다. 김정일.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 가장 아프게 한다 2, 서울: 도서출판 두리미디어, 2007: 202.
부정하는 것보다 긍정하는 법을 배워라. 생각이 말이 되고 말이 행동이 된다. 스쳐 지나는 사람, 꽃, 날씨 하나에도 호기심과 경이로움을 멈추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경이로움은 주변에 대한 사랑을 만든다. 미래는 예측할 수 없지만 그래도 만들어가는 것이다.
글을 쓴다는 건 어떤 직업을 갖든 필수적으로 지녀야 할 기본소양이다. 글쓰기에 자신이 없다면 자신 의견을 설득력 있게 표현할 수 없다는 얘기다. 하물며 그것이 오랜 기간 교직 밥을 먹어 온 교사라면 두말할 나위 없다.
솔직히 글을 쓴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니다. 어휘는 물론이고 맞춤법과 문맥에 이르기까지 늘 신경을 곤두세워야 한다. 더구나 신문의 사설이나 칼럼 등은 눈앞의 현안과 이슈에 대한 깊이와 통찰을 필요로 한다. 문장 하나를 쓰더라도 머릿속 창고에서 최적의 표현을 찾아내는 작업이 녹록지 않다.
그러니 글을 쓰는 과정서 늘 심리적 압박에 휘달리기 일쑤다. 잘 써지지 않을 땐 몇 줄의 진척도 없이 글은 천리 밖으로 달아나고 만다. 심지어 마감에 쫓겨 전전긍긍하는 꿈에 부대끼는 것도 숱하다. 또한 글을 쓸 땐 사람들에게 좋은 영향을 주고, 생각할 거리를 주자는 마음이었다. 현업서 뛸 때 나름 절제한다고 했지만 본의 아니게 비판의 칼을 휘둘렀을 수 있다. 당사자들에게 상처가 됐을 수 있기에 회한으로 다가온다.
100세 시대라는데 그저 반갑지만은 않다. 고희(古稀)를 넘어선 지금은 항산(恒産)은 불안정해지고 고뇌는 깊어진다. 은퇴 시점을 종착역으로 받아들여야 할지, 이모작을 시작하는 출발점으로 잡을 것인지는 오롯이 나의 몫일 터다.
돌이켜 보면 20대 후반 패기 하나로 홀로 섰다. 나이 망팔(望八)에 이르러서는 마음을 나눌 내 편이 곳곳에 포진해 있지 않은가.
이쯤에서 만절(晩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