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언:
다음은 창세기 2장 7절이다.
"여호와 하나님이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명의 기운을 그 코에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명이 되는 있음이 되니라."
"Then the Lord God formed a man from the dust of the ground and breathed into his nostrils the breath of life, and the man became a living being."
이 구절에서 저는 두 가지 중요한 사항을 언급하고자 "사람 너머 인간"이라는 이름으로 책을 내고 있다. 이번이 세 번째다. 아마 계속 지속될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저는 이곳에서 두 단계의 창조 과정을 보았고, 그 두 단계의 과정에서 나온 창조물로 첫 번째 창조물은 사람(man), 두 번째 창조물은 살아 있는 있음(a living being)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즉 두 실체가 있는데, 하나는 사람(man)이고, 또 다른 하나는 살아 있는 있음(a living being)이다.
형상과 모양이 있는 존재로서 사람(man)과 형상과 모양이 없는 존재로서 살아 있는 있음(a living being)이다.
원자는 형상과 모양이 있는 전자 등의 알갱이가 있지만, 형상과 모양이 없는 원자 안의 텅 빈 공간으로 되어 있다.
마치 이 원자와 같이, 최종 신의 작품인 살아 있는 있음(a living being)을 설명하고 싶어 이와 같은 글을 쓰고 있는 것이다.
개인적인 의견이고 꼭 맞다고는 할 수 없지만, 나는 이렇게 성경이 보인 후에 내 자신이 먼저 죽은 것 같은 상황에서 살아났고, 성경의 모든 부분이 일시에 다 이해되기 시작하는 느낌이 든 것이다.
하는(doing) 차원으로만 살아가는 사람이 있음(being) 차원이 있다는 것을 아는 것은 거의 기적에 가깝다.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하는 차원이 아니라 있음 차원이 있다는 것을 아는 것일 것이다.
이 있음 차원이 보이지 않으면 무의식적으로 마음과 동일시된 에고가 자기 자신이 되어 하는 차원으로만 살아가게 된다. 마음은 싫고 좋고, 높고 낮고, 좌고 우고 다 이원성이고 분열이고 경쟁이다. 지속적인 만족은 없고 갈등과 투쟁의 연속이며, 결국 어느 사람이든 절망, 허망, 허탈을 만나게 된다.
바로 이와 같이 하는 차원으로만 살 수밖에 없는 피조물은 성경적으로 말하자면 흙으로 지어진 몸과 마음만으로 살아가는 사람(man)이다.
이것이 전부라면, 흙으로부터 지음받은 사람이나 흙으로 지어진 동물이나 공중의 새와 같은 차원의 피조물에 불과하지만, 성경은 그 흙으로 지음받은 사람에게 신의 숨을 불어넣어 지어진 피조물도 있다는 것을 적어놓고 있다.
바로 영어로 a living being이다. 이것을 산혼 또는 생령으로 번역했기에 그 대목을 쓰신 분의 의도를 충분히 반영하지 않았다고 느껴져, 나는 직역을 해 보았다. "살아 있는 있음"이라고.
그래서 형상과 모양이 있는 사람에서 형상과 모양이 없는 인생의 본질과 근원을 나타내는 것으로 "살아 있는 있음(a living being)"을 보게 된 것이다. 표현과 설명의 필요성으로 나름 1차 창조물로 사람 그리고 2차 창조물로 살아 있는 존재(a living being)로 나누어 설명해 보았다.
육과 마음(혼)으로 된 사람(man)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그런 것들이 존재할 수 있게 한 살아 있는 있음(a living being)이라는 것이다.
주인이 있으면 주인의 집에 있는 모든 것이 가치가 있게 되지만, 주인이 없는 사물들은 머지않아 쓰레기와 같은 것으로 변한다.
바로 사람은 몸과 마음이 바로 자신이 되었지만, 살아 있는 있음은 주인의 보호를 받는 몸과 마음으로 변하게 된다.
성경은 이런 사항을 아주 간단한 사실을 한 줄로 표현했다. 총론이다. 이 총론이 알아지니 성경의 모든 부분이 어디를 말하는지 저절로 쉽게 알아지게 되는 느낌을 받게 된다. 2025. 02. 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