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네디 편은 미국의 제35대 대통령인 존 F. 케네디는 미국과 관련된 국내외 문제를 해결하는 데 있어 ‘뉴 프런티어’적인 접근방식올 개발했다. 그의 대통령 재직시 업적으로는 핵실험금지 조약체결, 평화봉사단 창설, ‘진보를 위한 동맹’으로 명명된 라틴 아메리카와의 10개년 협력계획, 그리고 우주 개발에 대한 자금배당과 함께 이 계획의 목적을 구체적으로 확정한 것 등이 있다. 그리고 ‘국민의료보장’과 같이 그가 생전에 제안했던 수많은 법률안들이 이후에 의회를 통과해 법률로 확정됐다.
케네디는 제2차 세계대전 때 미 해군에 복무했고, 1957년 플리처상 ‘용기있는 인물’ 부문의 상을 수상했다. 이후 그는 1963년 텍사스주 델라스시에서 암살당했다.
다음은 1961년 1월 20일 워싱턴에서 있었던 케네디 대통령의 취임연설문이다. 케네디는 능란한 연설가였으며 그의 취임연설은 하나의 생생한 기록이다. 그는 그의 사상과 희망을 신선한 말들로 표현했으며 그의 취임연설은 지금도 매우 자주 인용되고 있다.
맥나마라 편은 존 드케네디 대응령에 의해 국방부장관에 발탁됐던 로버트 S.맥나마라는 존슨 행정부 시절인 1968년까지 국방부장관직을 맡았었다. 국방부장관 이전에는 포드 자동차 회사의 사장이기도 했던 그는 장관직을 그만둔 후 세계은행 총재직을 역임하였다.
다음은 1966년 5월 18일 캐나다 몬트리올의 번엘리자베드 호텔에서 열린 미국신문 편집인협회에서의 그의 연설문이다. 이 연설에서 맥나마라는 ‘전쟁과 빈곤’이라는 연설주제 외에도 미국의 대외정책에 관한 그의 의견을 명확히 제시했다. 다은은 그가 행했던 연설의 주요 부분을 발췌한 것이다.
말콤 엑스 편은 말콤 리를은 1925년 5월 19일 네브래스카주 오마하에서 태어났다. 나살에 학교에서 퇴학당한 그는 21살 때 강도혐의로 기소되어 수감되었다. 감옥에 있는 동안 그는 이슬람 국민파(흑색 모슬렘)로 개종했으며, 1952년 석방되자 말콤 엑스란 이름을 채택하고 그 운동의 지도적인 인물이 되었다. 19633년 그는 그가 맡고 있던 뉴욕 모슬렘사원 승정 직위에서 해임되었다.
해임된 후 그는 아프리카와 중동으로 두 차례 여행했다. 미국으로 돌아온 말콤 엑스는 아메리카 흑인 단합기구라는 명칭으로 새로운 운동을 조직하기 시작했다. 그는 모슬렘의 종교적인 이데올로기는 포기했지만 흑인 민족주의 관념은 그대로 견지하고 비폭력을 거부했다. 그는 1965년 2월 21일 암살당했다. 그가 죽을 무렵 그는 흑인혁명의 가장 활력적인 지도자로 부상하고 있었다.
다음은 그가 뉴욕시 팜 가든에서 사회주의 조직인 〈투쟁하는 노동의 광장〉이란 단체가 후원한 모임에서 〈흑인혁명〉에 관해 행한 연설의 일부이다.
마틴 루터 킹 2세 편은 흑인민권운동의 탁월한 지도자였던 마틴 루터 킹 박사는 흑인의 권리쟁취를 위한 수단으로 비폭력을 확고하게 옹호한 인물이었다. 알라바마주 몽고메리의 택스터 애비유 침례교회 목사로서 킹 박사는 몽고메리 버스의 좌석차별대우에 대한 흑인들의 버스 보이코트를 지도하면서 흑인은 물론 백인 성직자, 기업인, 전문직 종사자, 학생들로부터 폭넓은 지지를 끌어냈다. 모어하우스 대학을 졸업한 그는 보스턴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았고, 1964년엔 노벨평화상을 수상했다. 1968년 4월 테네시주 엠피스에서 노동조건의 개선을 위해 공중위생담당 직원들의 시가행진을 추진하고 있었던 그는 그곳에서 암살당하고말았다.
1963년 8월 28일 수도 워싱턴에서 민권대행진 옥외집회가 열렸을 때 당시 남부기독교지도자협의회(SCLC) 회장이었던 킹목사는 연사로 나서 ‘나에겐 꿈이 있습니다’라는 연설을 했다.
이 연설은 링컨 기념관의 계단 위에서 행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