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소개
400년 전 마법사가 현대인에게 건네는 마지막 인사
셰익스피어의 『템페스트』를 처음 읽었을 때 나는 묘한 기분에 휩싸였다. 이것이 정말 『햄릿』이나 『맥베스』를 쓴 그 셰익스피어가 맞나 싶었다. 치열하고 어둡고 절망적인 비극들과는 전혀 다른 분위기였다. 마치 인생의 모든 폭풍을 겪고 난 후 마침내 고요한 바다에 도달한 사람의 마음 같았다.
『템페스트』는 셰익스피어가 홀로 집필한 마지막 작품이다. 1611년경에 완성된 이 희곡을 끝으로 그는 사실상 펜을 놓았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이 작품을 셰익스피어의 '작별 연설'로 읽는다. 실제로 작품 말미에서 마법사 프로스페로가 자신의 마법을 포기하고 지팡이를 부러뜨리는 장면은 극작가 셰익스피어 자신이 무대와 작별하는 모습처럼 보인다.
하지만 내가 이 작품에 매혹된 이유는 다른 데 있다. 『템페스트』에는 우리 시대가 절실히 필요로 하는 어떤 지혜가 담겨 있다. 분노를 내려놓는 법, 권력을 포기하는 용기, 그리고 무엇보다 용서라는 인간만이 가진 고유한 능력에 대한 깊이 있는 성찰 말이다.
이야기는 간단하다. 밀라노 공작 프로스페로가 형 안토니오의 배신으로 어린 딸 미란다와 함께 무인도에 유배된다. 12년 후, 마법을 익힌 프로스페로는 폭풍을 일으켜 자신을 배신한 사람들을 섬으로 끌어들인다. 복수할 절호의 기회다.
하지만 여기서 이야기는 예상과 다른 방향으로 흘러간다. 프로스페로는 복수 대신 용서를 선택한다. 원수들을 완전히 파멸시킬 수 있는 힘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그 힘을 사용하지 않는다. 이것이 『템페스트』가 다른 복수극들과 결정적으로 다른 지점이다.
더 놀라운 것은 프로스페로의 용서가 상대방의 뉘우침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안토니오는 끝까지 반성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프로스페로는 그를 용서한다. 이것은 조건부 용서가 아니라 무조건부 용서다. 상대방이 변하기를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먼저 변하는 것이다.
현실에서 이런 용서가 얼마나 어려운가. 우리는 보통 상대방이 먼저 사과하기를 기다린다. 진심으로 뉘우치는 모습을 보여야 용서를 고려한다. 하지만 프로스페로는 다르다. 그는 자신의 평화를 위해, 자신의 해방을 위해 용서한다. 이것이 바로 성숙한 인간이 도달할 수 있는 최고의 경지가 아닐까.
『템페스트』에서 또 하나 주목할 점은 권력에 대한 독특한 시각이다. 프로스페로는 마법이라는 절대적 권력을 가지고 있다. 그는 바람과 바다를 조종하고, 정령들을 부리며, 사람들의 마음까지 마음대로 움직일 수 있다. 현대로 치면 무한한 기술력을 가진 존재다.
하지만 작품의 마지막에서 그는 이 모든 권력을 포기한다. "이 거친 마법을 이제 나는 포기한다"고 선언하며 지팡이를 부러뜨리고 마법서를 바다에 던지는 장면은 문학사에서 가장 상징적인 순간 중 하나다.
현대인들은 권력을 추구한다. 경제적 권력, 정치적 권력, 사회적 영향력, 기술력. 그런데 프로스페로는 묻는다. 그 권력이 정말 당신을 행복하게 만드는가? 권력은 수단이어야 하는데 언제부터 목적이 되었는가?
프로스페로의 권력 포기는 패배가 아니라 선택이다. 그는 더 이상 마법에 의존하지 않고 평범한 인간으로 살아가기로 결심한다. 이것은 어떤 의미에서 가장 용기 있는 선택이다. 절대적 힘을 가진 자가 그 힘을 스스로 내려놓는 것보다 어려운 일이 어디 있겠는가.
『템페스트』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젊은 연인 페르디난드와 미란다의 사랑 이야기다. 특히 미란다가 새로운 사람들을 보며 감탄하는 장면은 이 작품의 백미다. "오, 멋진 신세계여, 이런 사람들이 사는!"
이 말은 나중에 올더스 헉슬리의 소설 제목이 되기도 했지만, 원래는 순수한 감탄과 희망의 표현이었다. 미란다에게는 아버지의 원수들조차 '멋진 신세계'의 일부다. 새로운 세대는 기성세대의 편견과 원한에 얽매이지 않는다.
페르디난드와 미란다의 결합은 단순한 로맨스가 아니라 화해의 상징이다. 갈등하던 세력들이 사랑으로 통합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셰익스피어가 꿈꾼 이상적 해결책이다. 현실에서도 마찬가지다. 기성세대의 갈등은 종종 젊은 세대에 의해 해결된다. 미란다의 순수한 감탄은 바로 이런 가능성을 상징한다.
『템페스트』는 메타연극적 성격이 강한 작품이다. 프로스페로가 마법으로 만들어내는 환상들은 연극 자체에 대한 은유로 읽힌다. 무대 위의 환상, 배우들의 연기, 관객들의 몰입. 이 모든 것이 마법과 다를 바 없다.
특히 유명한 "우리는 꿈과 같은 재료로 만들어졌다"는 대사는 예술과 현실의 관계에 대한 셰익스피어의 통찰을 보여준다. 예술은 아름답지만 덧없다. 하지만 바로 그 덧없음 때문에 더욱 소중하다. 영원하지 않기 때문에 더욱 아름다운 것이다.
프로스페로가 마법을 포기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마법은 현실을 도피할 수 있게 해주지만, 동시에 현실에서 멀어지게도 만든다. 진정한 삶은 마법이 아니라 일상에 있다. 환상이 아니라 현실에 있다.
400년 전 작품이 왜 지금도 의미가 있을까. 나는 그 답을 현대인의 '분노'에서 찾는다. 우리는 분노의 시대를 살고 있다. 개인적 분노, 사회적 분노, 정치적 분노. 모든 것에 화가 나 있다.
하지만 분노는 우리를 어디로 데려가는가. 복수는 또 다른 복수를 낳을 뿐이다. 프로스페로가 12년 만에 깨달은 것이 바로 이것이다. 분노와 복수의 끝은 허무다. 진정한 해방은 용서에서 온다.
물론 용서가 쉽지 않다는 것을 안다. 특히 상대방이 반성하지 않을 때는 더욱 그렇다. 하지만 『템페스트』는 말한다. 용서는 상대방을 위한 것이 아니라 자신을 위한 것이라고. 자신의 평화를 위한 것이라고.
코로나19를 겪으며 우리는 '고립'과 '성찰'의 시간을 가져야 했다. 프로스페로가 무인도에서 보낸 12년은 바로 이런 강제적 고립과 성찰의 시간이었다. 그리고 그 시간의 끝에서 그가 선택한 것은 복수가 아니라 용서였다. 이것이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가 배워야 할 지혜가 아닐까.
이번 번역에서는 셰익스피어의 시적 아름다움을 살리되 현대 독자가 부담 없이 읽을 수 있도록 했다. 원문의 고어나 복잡한 수사법을 현대적 감각으로 풀어냈지만, 작품이 가진 철학적 깊이는 그대로 유지했다.
특히 연극적 생명력을 중시했다. 『템페스트』는 무엇보다 무대에서 상연되기 위한 작품이다. 따라서 배우가 실제로 말할 수 있고, 관객이 들어서 바로 이해할 수 있는 자연스러운 대사로 번역했다. 프로스페로의 긴 독백들은 현대 연극 무대에서도 충분히 감동을 줄 수 있도록 세심하게 다듬었다.
또한 문화적 맥락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했다. 16세기 영국의 사회 구조나 관습을 한국 독자가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은 적절히 설명하거나 현대적 감각으로 옮겼다. 신분제적 언어나 고어체 존댓말은 현재 우리가 사용하는 자연스러운 경어법으로 번역했다.
무엇보다 이 책에는 작품에 대한 깊이 있는 해설이 포함되어 있다. 단순히 줄거리를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작품이 현대 독자에게 주는 의미와 메시지를 구체적으로 분석했다. 셰익스피어 연구의 최신 성과들을 반영하되, 일반 독자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서술했다.
『템페스트』를 읽는다는 것은 성숙함을 배우는 일이다. 분노를 내려놓고, 권력을 포기하고, 마법 대신 현실을 선택하는 용기를 배우는 일이다. 그것이 바로 이 작품이 400년이 지난 지금도 우리에게 전하는 메시지다.
세상에 화가 나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누군가를 용서하지 못해 괴로워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그리고 진정한 평화를 찾고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이 책을 권한다. 셰익스피어의 마지막 작품이 건네는 지혜를 만나보길 바란다.
* 이 책은 수익금의 일부를 어린이재단에 기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