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99년 7월 15일, 예루살렘이 함락되었다. 그날 하늘은 말이 없었고, 땅에는 피가 흘렀다. 신앙은 기쁨에 울었고, 무수한 생명이 그 자리에서 꺾였다. 역사상 가장 상징적인 도시를 향한, 가장 극적인 전쟁. 이 책은 그 장면이 만들어지기까지의 과정을 다시 들여다보는 기록이다.
제1차 십자군이란 단어 앞에서 우리는 두 개의 인상을 동시에 떠올리게 된다. 하나는 성지를 되찾기 위해 바다를 건너고 사막을 건넌 이들의 신앙과 헌신, 그리고 또 하나는 무고한 생명이 찢기고 타오른 피의 기억이다. 어떤 이는 이것을 영웅의 역사라 부르고, 또 어떤 이는 문명의 충돌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이 책은 그러한 평가에 앞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를 차분히 살펴보고자 한다.
누가, 왜, 어떻게 이 전쟁에 참여했는가? 그들은 성지를 어떻게 이해했고, 무엇을 기대했으며, 결국 무엇을 보고 돌아갔는가? 그 과정에서 종교는 어떤 역할을 했고, 폭력은 어떻게 신앙과 손을 맞잡게 되었는가? 이 책은 판단보다 관찰을, 해석보다 묘사를 우선한다. 수천 킬로미터를 걷고 싸우고 죽어간 사람들의 시선과 감각을 따라가며, 그들이 마주한 사건의 단면을 최대한 생생하게 재현하려고 한다.
동시에, 그 여정의 끝에서 남겨진 풍경을 바라보며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가 이 이야기를 어떻게 기억하고 받아들여야 하는가에 대해 조용히, 그러나 정직하게 묻고자 한다. 십자군 전쟁은 과거의 사건이지만, 그 유산은 지금도 다양한 방식으로 남아 있다. 신의 이름으로 휘두른 칼은, 때론 정당화되고, 때론 악용되며, 우리 곁을 떠나지 않는다. 이 책은 제1차 십자군이라는 역사적 사건을 기록하면서, 그 이면에 자리한 인간의 열망과 공포, 신념과 광기, 믿음과 침묵의 결을 따라가 보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