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소개
사랑에 빠진 사람들은 모두 바보가 된다. 권력을 쥔 사람들은 더더욱 그렇다. 셰익스피어의 『안토니와 클레오파트라』는 바로 그 바보들의 이야기다. 하지만 이 바보들이 얼마나 아름답고 숭고한지, 읽고 나면 우리 자신이 얼마나 초라한 현실주의자인지 깨닫게 된다.
마르쿠스 안토니우스. 로마 제국을 셋으로 나누어 다스리는 삼두정치의 한 축이다. 카이사르의 오른팔이었고, 브루투스와 카시우스를 무찌른 명장이다. 그런 그가 이집트의 여왕 클레오파트라와 사랑에 빠져 모든 것을 잃는다. 정치적으로 보면 완전한 실패작이다. 하지만 인간적으로 보면? 그보다 더 완전한 사랑이 있을까.
클레오파트라 역시 마찬가지다. 이집트의 마지막 파라오. 율리우스 카이사르의 연인이었고, 이제는 안토니우스와 사랑에 빠져 있다. 정치적 계산으로 시작된 사랑이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사랑이 진짜가 되는 순간, 그녀는 모든 정치적 이익을 포기한다. 심지어 목숨까지.
이 작품이 흥미로운 이유는 사랑과 정치라는 두 개의 거대한 힘이 정면충돌하기 때문이다. 사랑은 개인적이고 감정적이며, 정치는 집단적이고 이성적이다. 안토니우스와 클레오파트라는 이 두 힘 사이에서 끊임없이 흔들린다. 때로는 정치인으로, 때로는 연인으로. 그리고 마침내 연인으로 죽기를 선택한다.
셰익스피어가 이 이야기를 통해 보여주고 싶었던 것은 무엇일까. 아마도 인간의 본질적 모순일 것이다. 우리는 이성적 존재이면서 동시에 감정적 존재다. 사회적 책임을 져야 하면서 동시에 개인적 욕망을 추구한다. 안토니우스와 클레오파트라는 이 모순을 극단까지 밀어붙인 인물들이다.
특히 클레오파트라라는 캐릭터는 문학사상 가장 매혹적인 여성 인물 중 하나다. 그녀는 단순한 미인이 아니다. 지적이고 정치적이며, 동시에 변덕스럽고 감정적이다. 그녀의 매력은 예측 불가능성에 있다. 안토니우스가 그녀에게 빠져드는 이유를 우리는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로마의 젊은 카이사르 옥타비우스(훗날 아우구스투스)는 이들과 대조적인 인물이다. 냉철하고 계산적이며, 감정보다는 이성을 우선시한다. 그는 결국 승리하지만, 독자들은 그의 승리를 마냥 기뻐할 수 없다. 왜냐하면 그것은 동시에 인간적인 것들의 패배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이 번역본의 가장 큰 장점은 원작의 시적 아름다움을 현대 한국어로 자연스럽게 옮겨냈다는 점이다. 셰익스피어의 언어는 400년 전 영어다. 현대 영어권 독자들도 원문을 읽기 어려워한다. 하물며 한국 독자들이야 오죽할까. 이 번역본은 그런 언어적 장벽을 완전히 제거했다.
특히 클레오파트라의 마지막 독백은 압권이다. 독사에 물려 죽어가면서도 그녀는 여전히 여왕이며 연인이다. "나는 불과 공기다. 나의 다른 원소들은 더 천한 삶에 맡긴다." 이런 대사를 한국어로 읽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이 책의 가치는 충분하다.
작품 해설 부분에서는 16-17세기 영국과 로마 제국 말기의 역사적 배경을 상세히 다룬다. 셰익스피어가 이 작품을 쓴 시대적 맥락과 그가 참고한 플루타르코스의 『영웅전』에 대한 설명도 포함되어 있다. 무엇보다 이 작품이 현대에도 여전히 유효한 이유들을 명확히 제시한다.
사랑 때문에 모든 것을 잃는 이야기는 언제나 매력적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랑 이야기는 개인적이고 소규모다. 『안토니와 클레오파트라』는 다르다. 여기서 사랑은 제국의 운명을 좌우한다. 개인의 감정이 역사의 흐름을 바꾼다. 그런 점에서 이 작품은 셰익스피어의 다른 비극들보다 더 웅장하고 장엄하다.
현대를 사는 우리에게 이 작품은 어떤 의미일까. 아마도 진정한 사랑의 가능성에 대한 질문일 것이다. 모든 것을 계산하고 타산하는 시대에, 모든 것을 걸 수 있는 사랑이 과연 가능할까. 안토니우스와 클레오파트라는 그것이 가능하다고, 아니 그것만이 진짜 삶이라고 말한다.
물론 그들의 선택은 현실적으로 보면 무책임하고 파괴적이다. 안토니우스에게는 로마에 아내가 있고, 클레오파트라에게는 이집트 백성들이 있다. 하지만 사랑이란 원래 그런 것 아닌가. 모든 책임과 의무를 뛰어넘는 것이야말로 사랑의 본질이다.
이 책을 읽는 독자들은 두 가지 상반된 감정을 느낄 것이다. 한편으로는 안토니우스와 클레오파트라의 사랑에 감동받을 것이고, 다른 한편으로는 그들의 무책임함에 답답함을 느낄 것이다. 바로 그 양가감정이야말로 이 작품이 위대한 이유다. 인간의 복잡함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기 때문이다.
셰익스피어의 작품 중에서도 『안토니와 클레오파트라』는 특별한 위치를 차지한다. 『햄릿』이나 『리어 왕』처럼 유명하지는 않지만, 인간 본성에 대한 통찰은 더 깊고 복합적이다. 이 번역본을 통해 한국 독자들도 그 깊이를 온전히 느낄 수 있을 것이다.
* 이 책은 수익금의 일부를 어린이재단에 기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