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소개
사랑 때문에 친구를 배신해본 적이 있는가? 아니면 친구 때문에 사랑을 포기해본 적은? 이런 질문을 받으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잠깐 침묵한다. 답하기 곤란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모두 완벽한 친구이자 완벽한 연인이고 싶어 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못한 경우가 더 많다. 바로 이 지점에서 셰익스피어의 『베로나의 두 신사』가 시작된다.
이 작품은 셰익스피어가 20대 후반에 쓴 초기작이다. 『햄릿』이나 『로미오와 줄리엣』 같은 후기 걸작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덜 알려져 있지만,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더 흥미롭다. 아직 완숙하지 않은 젊은 작가의 날것 그대로의 감성과 통찰이 고스란히 담겨 있기 때문이다. 마치 거장이 되기 전 미켈란젤로의 습작을 보는 것 같은 묘한 매력이 있다.
줄거리는 단순하다. 베로나의 두 젊은 신사 발렌타인과 프로테우스가 주인공이다. 발렌타인은 세상 경험을 쌓기 위해 밀라노로 떠나고, 프로테우스는 연인 줄리아 때문에 베로나에 머물고 싶어 한다. 하지만 아버지의 명령으로 프로테우스도 결국 밀라노로 가게 되고, 그곳에서 발렌타인이 사랑하는 실비아를 보는 순간 한눈에 반해버린다. 여기서부터 이야기는 복잡해진다. 친구를 배신하고 실비아를 차지하려는 프로테우스, 자신을 찾아 남장을 하고 밀라노까지 온 줄리아, 모든 사실을 모른 채 추방당하는 발렌타인. 그리고 마지막에는 모든 갈등이 해결되는 전형적인 셰익스피어식 해피엔딩.
하지만 이 작품의 진짜 매력은 줄거리에 있지 않다. 인물들의 심리 변화를 따라가는 재미에 있다. 특히 프로테우스라는 캐릭터는 놀랍도록 현실적이다. 그는 악역이 아니다. 그냥 평범한 인간이다. 사랑에 빠지면 이성을 잃고, 욕망 앞에서는 도덕을 저버리고, 그러면서도 스스로를 합리화하려 애쓰는. 우리 모두의 모습 말이다.
셰익스피어는 프로테우스의 내적 갈등을 이렇게 그려낸다. "한 열기가 다른 열기를 쫓아내듯이, 한 못이 힘으로 다른 못을 밀어내듯이, 새로운 대상이 내 예전 사랑의 기억을 완전히 잊게 만든다." 사랑의 변심을 이보다 정확하게 묘사한 문장이 있을까? 400년 전에 쓰인 말이지만 지금 읽어도 소름이 돋는다.
물론 이 작품을 단순히 연애 소설로만 읽어서는 안 된다. 여기에는 권력과 계급,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 여성의 지위 같은 사회적 주제들도 촘촘히 직조되어 있다. 특히 줄리아라는 캐릭터는 주목할 만하다. 그녀는 16세기 기준으로는 상당히 진보적인 여성이다. 사랑하는 남자를 찾아 혼자 먼 길을 떠나고, 남장을 하고, 적극적으로 자신의 운명을 개척해 나간다. 오늘날의 독립적인 여성들과 별반 다르지 않다.
그런데 이런 매력적인 작품을 왜 많은 사람들이 읽지 않을까? 답은 간단하다. 어렵기 때문이다. 기존의 셰익스피어 번역본들은 대부분 원문의 고어적 뉘앙스를 살리려다 보니 현대 독자들에게는 여전히 접근하기 어려웠다. 마치 박물관에 전시된 유물을 보는 것 같다고 할까. 아름답긴 하지만 생생하지 않고, 감동적이긴 하지만 가슴에 와 닿지 않는다.
이 의역본은 바로 그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셰익스피어의 극적 언어와 시적 아름다움은 최대한 살리면서도, 현대 한국 독자들이 편안하게 읽을 수 있도록 자연스럽게 의역했다. 등장인물들의 대화가 마치 오늘날 우리가 실제로 하는 말처럼 들린다. 복잡한 문장 구조는 단순화했고, 고어적 표현은 현대적 감각으로 바꿨다. 무엇보다 읽는 재미를 놓치지 않으려 노력했다.
예를 들어 런스라는 하인 캐릭터의 대사들을 보자. 원문에서는 온갖 말장난과 언어유희로 가득한데, 이것을 직역하면 한국 독자들은 전혀 웃을 수 없다. 하지만 이 의역본에서는 한국적 정서에 맞는 유머로 재창조했다. 원문의 재치는 살리되, 우리가 자연스럽게 웃을 수 있는 방식으로 번역한 것이다.
또한 이 책에는 상세한 작품 해설이 포함되어 있다. 단순히 줄거리를 요약하는 수준이 아니라, 작품의 문학사적 의의, 등장인물 분석, 주요 주제 해석, 당시의 사회적 배경 등을 체계적으로 다뤘다. 셰익스피어를 처음 읽는 독자들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도록 친절하게 안내한다.
무엇보다 이 작품은 셰익스피어 입문서로서 탁월하다. 『햄릿』이나 『맥베스』 같은 대작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구조가 단순하고 분량도 적당하다. 하지만 셰익스피어 특유의 극적 아이러니, 복잡한 인물 심리, 시적 언어, 사회 비판 의식이 모두 들어 있다. 마치 셰익스피어 전집의 압축판을 보는 것 같다.
그렇다면 이 책을 왜 읽어야 할까? 첫째, 재미있다. 사랑과 우정 사이에서 벌어지는 갈등, 예측 불가능한 인물들의 행동,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 스토리는 현대의 어떤 드라마나 영화와 비교해도 뒤지지 않는다. 둘째, 유익하다. 인간 본성에 대한 깊이 있는 통찰, 시대를 초월한 보편적 주제들은 우리의 삶을 돌아보게 만든다. 셋째, 교양에 도움이 된다. 서구 문학의 정점이라 할 수 있는 셰익스피어를 읽는다는 것 자체가 지적 성장에 기여한다.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이런 실용적 이유들이 아니다. 이 작품을 읽는 진짜 이유는 인간이라는 존재에 대해 더 깊이 이해하게 되기 때문이다. 프로테우스의 배신을 읽으며 우리는 우리 자신의 어두운 면을 마주하게 되고, 줄리아의 용기를 보며 사랑의 진정한 의미를 깨닫게 된다. 발렌타인의 절망과 희망을 따라가며 인생의 부침을 받아들이는 법을 배운다.
400년 전 한 젊은 영국인이 쓴 이야기가 오늘날 우리에게 여전히 감동을 주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시대는 바뀌었지만 인간의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 사랑하고, 질투하고, 배신하고, 용서하는 마음은 예나 지금이나 똑같다. 『베로나의 두 신사』는 바로 그런 변하지 않는 인간의 마음을 가장 정확하게 포착한 작품이다.
* 이 책은 수익금의 일부를 어린이재단에 기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