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스필드는 1908년 열아홉 살의 나이로 뉴질랜드의 유복한 사회를 떠난 이후 죽을 때까지 영국 문학계에서 일종의 변방인의 자리에 머물렀다. 그녀는 주변의 지인들과 열정과 긴장, 경쟁, 불신의 관계를 유지했다. 당시 문학계의 여성들은 대개 내조자, 후원인, 시적 영감의 대상, 또는 정부(情婦)에 불과했지, 그녀가 되고 싶어 하던 독자적인 예술가는 아니었다. 더욱이 이 자유분방한 문학계에서조차 오래된 사회 계층 간의 차별이 끈질기게 이어졌는데, 식민지 출신이며 아버지가 자수성가한 은행가라는 그녀의 배경은 ‘지방 출신’과 ‘장사치’라는 기존의 속물에 대한 고정관념에 부합했다. 캐서린 맨스필드 하면 무엇보다도 그녀의 예민한 감수성이 떠오른다. 감수성에다가 자연과 인간에 대한 예리한 통찰, 게다가 밝고 싱싱한 시정(詩情)이 연상된다. 맨스필드는 이러한 추세를 일찌감치 예지하고 그것을 그녀다운 수법으로 소화하여 활용하기 시작했던 작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