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고전에는 이두로만 알 수 있는 글이 적지 않다. 가령 위지 한전에 혹가(或加)라는 글귀가 있다. 이제까지 모든 이가 혹은 더하다고 이 말을 읽었기에 미찌/미추홀이라는 나라가 서기 346년까지 존재했던 역사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이 혹가는 꼬까의 이두 표기이며 최고 내지 최상을 뜻하는 말이다.
비류와 온조는 한강가에 자리잡았는데 후에 비류왕은 미찌/미추홀을 세우고 온조왕은 백제를 세운것이 삼국사기는 서기전 1세기라고 한다. 비류가 시조인 미찌/비추홀은 한동안 인천에 있다고 서기 246년에 우리구루로 왕도를 옮기고 서기 346년까지 이곳에 있었다.
그런데 이들 미찌 사람들은 서해안 따라 더 남하했고 한반도 남해안과 북규슈에까지 퍼져 살았던 것이다. 이들이 이주역사를 밝혀 주는 한가지 증거는 이들이 지닌 믿음이다.
곧 소마리 믿음이다. 소는 신령, 마리는 산을 뜻하는 옛말인데 숭산이라고 이두표기했고 일본서기는 소시모리라고 적고 있던 것이다.
마한과 변한을 거느리던 미찌 이주민 가운데 규슈로 간 히미꼬 여왕은 야마또 나라를 세웠고 그 일부인 모노노베씨는 나라현 시끼로 4세기 초에 이주해 세운 고을 나라는 서기 396년에 역시 이곳으로 망명해 온 백제 후왕 고마 확기가 이곳에 대왜를 세우게 된 것을 알게된 것도 이두 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