툭, 무심하게 시작하는
6월 초 어쩌다 나를 찾았고, 주위 분들에게 많은 관심과 사랑을 받았다. 감사하다. 이제 나는 철이 들지 않기로 한다. 어릴 적 성숙하다는 말, 어른스럽다는 말, 생각이 깊다는 말, 그 모든 말들 뒤에 숨은 '눌림'과 '인내'가 내 마음을 오랜 시간 자유롭지 않게 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참어른이 되어가며, 감정을 감추는 대신 드러내는 용기를 배우고, 참는 대신 나를 한 번 쯤 돌아보고 살피는 연습을 자연스럽게 하게 됐다. 무게보다 가벼움을 선택했고, 체면보다 솔직함을 택했다.
그리고 비로소 깨달았다. 철이 든다는 건 때로 내 마음을 나답지 않게 만드는 일이기도 한다는 걸. 이제 나는 모든 감정을 고스란히 품고, 조금 투박하고 서툴더라도 아니 조금 이기적이더라도 철들지 않은 나로 살아내기로 한다.
사는 게, 살아내는 게, 온전히 내가 나로서 내가 되는 일이라면 나는 기꺼이 철들지 않겠다고 다짐한다. 그게 나를 지키는 가장 다정한 방식이니까.
- 여유
어머니의 기억 속에 어린 나는
‘애늙은이‘였다. 심드렁하고 뭔가 세상 심각한 듯한 표정이 별난 아이였다. 궤변 같지만, 나이가 들어감에도 철딱서니가 없다는 건 그 애늙은이가 점차 성숙해 가는 과정처럼 느껴진다. 정확하게게는 숙성이라는 말이 더 맞을 것 같다.
흔히, 나이가 들어갈수록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 것들, 내가 통제할 수 없는 것들을 수용하고 마음의 동요 없이 받아들임에 익숙해지는 걸 어른스러워지는 과정으로 흔히 말하지만, 난 동의하지 않는다.
늙은 개의 쓸쓸한 눈을 관찰한 적이 있다. 볕 좋은 날 마당 한편에 묶인 채로 불편함이나 아무 걱정거리 없는 하루, 지나가는 다른 개에게조차도 짖지 않는 노구(老狗)의 그 눈빛은 생기 잃은 눈동자의 깊이만큼 몸에 밴 무기력함 자체였다.
생각마저도 늙어간다고 믿으며 노구(老軀)에 의지해 살아가면서 생기 잃음을 숙명으로 받아들이는 지루함에 절어 있는 노인의 모습을 떠올리게 했다.
천둥은 큰소리를 울리며 갑자기 나타나 사람들을 놀라게 하는데 잠자리는 상관하지 않고 날아다닌다. 천둥처럼 무서운 상황에서도 두려워하지 않고 분별없이 행동하는 사람, 이것이 ‘천둥벌거숭이’라는 말의 유래다.
나는 그 잠자리처럼 철없는 생기 가득한 천둥벌거숭이처럼 살고 싶다.
- 타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