흙냄새 가득한 시간들
일흔을 훌쩍 넘긴 지금, 문득 뒤를 돌아보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 흙냄새 나는 기억들입니다. 맨발로 밟던 마당 흙의 촉감, 골목을 스치던 바람의 냄새, 그리고 그 사이로 스며들던 사람들의 웃음과 눈물들. 가난했지만 정이 있었고, 불편했지만 따뜻했던 시절이 고스란히 떠오릅니다.
어릴 적 나는 죽마고우들과 들판을 누비며 놀았습니다. 바짓가랑이를 걷어 올리고 논두렁을 지나 우포늪 가에 이르면, 창포잎 흔들리는 물가에서 조개를 잡고, 발가벗은 채 물장구치던 여름날이 지금도 눈앞에 아른거립니다. 새벽안개가 채 걷히기도 전, 물안개 사이로 들려오던 새들의 울음소리. 그 곁에 서서 말없이 하늘을 올려다보던 친구들. 그들과 나눈 하루하루는 어느덧 삶의 가장 소중한 풍경으로 제 안에 남아 있습니다.
제삿날 아침, 마루 안 끝에 조용히 놓인 술잔과 향, 그리고 “우리 자손들 바르게 살아가게 해주소. 하며 낮게 읊조리던 어른들의 기도는, 말은 없었지만 깊은 사랑이었습니다. 그 마음 또한 제 뿌리처럼 지금까지 저를 지켜주고 있습니다.
이 시집은 그런 기억들을 불러 모아 쓴 글들입니다. 흙냄새처럼 진하고 구수한 삶의 단면들, 자연과 계절 속에 스며 있는 감정들, 그리고 고향과 가족이 품어준 따뜻한 이야기들이 하나하나 얽혀 있습니다.
누군가는 이 시들 속에서 자신의 유년 한 조각을 마주하길 바랍니다. 또 누군가는 지금의 소중함을 새삼 느낄 수 있기를 바랍니다. 비록 평범한 말들이지만, 그 안에 담긴 마음만큼은 누구보다 진심으로 꾹꾹 눌러 담았습니다.
흙냄새 가득한 삶의 여정을 함께 걸어주시는 모든 분들께 고마운 마음을 전하며, 이 시집을 시작합니다.
2025년 어느 여름 석호춘(裕當)