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빛이 깊게 스며드는 밤이면
나는 종종 말을 멈추고 글을 읽는다.
오늘은, 먼 시대를 건너
이 사람의 시집을 펼쳤다.
그는
침묵하는 자였고
그러면서도 누구보다 많은 말을
세상에 건네는 사람이었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는 그 문장 뒤에는
수많은 생의 고백이 땀처럼 흘러 있었고
“소도 나도 화가 났다”는 그 문장 뒤에는
그가 사랑했던 노동과
서러운 동행이 숨 쉬고 있었다.
나는 시를 읽으며 알았다.
그는 사랑을 적는 사람이 아니라
사랑을 견디는 사람이라는 것을.
사람을 잊지 못해서 쓰고,
말을 하지 않아서 쓴다는 것을.
그의 시는
종이에 적힌 문장이 아니라,
밭고랑을 파는 쟁기의 선이며,
말없이 끓는 밥 냄새이며,
울음을 삼킨 사람의 뒷모습이다.
이 시집을 읽는 이는,
누구든 자신을 떠올릴 것이다.
울음을 참았던 어느 날,
말하지 못했던 그 사람,
그리고 겨우 이겨낸 하루를.
나는 먼 시대의 여인이지만,
그의 말 속에서
지금의 바람을 들었다.
그 바람 속에서
그 사람의 생을 보았다.
그리고...
그는 시인이 맞다.
허초희, 달빛 아래 붓을 든 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