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없는 텅 빈 곳에 들어섰어요. 그 누구도 보이지 않았어요.
수많은 사람으로 가득했던 그곳에 홀로 앉아 있다가, 평소에 생각날 때마다 읽고 또 읽었던 책 한 권이 떠올랐어요.
내 옆자리에 놓아둔 가방을 뒤적거리다가 나도 모르게 내 손에 쥐어진 작은 책자.
책장을 한 장씩 넘겨 봐요. 어슴푸레한 연자색의 노각나무 잎사귀 같은 책 표지를 지나자, 연밋빛의 노각나무 꽃잎 같은 수많은 이야기가 나를 반겨요.
어느 해맑고도 새맑은 날에 눈앞의 노각나무를 향해 마음속으로 크게 소리쳐 보듯 마음에 와닿는 문구를 읽어 볼 수 있는 책장을 넘기며, 쉽게 흘려버렸을지도 모를 지나온 이야기들을 큰마음의 소리와도 같은 나만의 손길로 풀어 보아요.
연자색이 어우러진 연한 노란빛 노각나무의 잎이 나풀거리는 나무 숲길을 걷듯이, 그 나무의 빛깔과 향기를 닮은 책 속을 거닐며, 그 그림 같은 선율을 마음속에 떠올려도 보고 눈앞에 그것을 또 펼쳐도 보아요. 바람에 흩어져 노각나무 숲길 위로 흩뿌려지는 노각나무의 꽃잎들 사이로 그 꽃잎들의 속삭임 같은 노래가 들려오는 듯해요.
조금 전까지만 해도 텅 비어 있던 그곳이, 그곳에 들어서는 사람들의 발걸음 소리로 어느덧 가득해져 갈 때쯤 손에 들려 있던 노각나무 잎사귀 같은, 꽃잎 같은 책자를 가방에 가만히 넣고, 앉아 있던 자리에서 일어나, 눈앞에 새롭게 펼쳐지는 끝없이 길게 이어진 큰길을 다시금 눈부시게 드밝게 비추어 줄 단 하나의 마음과도 같은 향기로운 그 빛줄기를 바라보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