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프롤로그 ●
“부모를 공경하라.” “남편은 아내를 사랑하고, 아내는 남편에게 순종하라.” 그런데 성경 책에는 정반대의 말씀도 있다. “나와 복음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어머니나 아버지나 자식이나 전토를 버리라”(막 10:29~30) “내가 불을 던지러 왔다. 세상에 화평을 주려고 온 것이 아니라 분쟁하게 하러 왔다. 한 집에서 아버지가 아들과, 아들이 아버지와, 어머니가 딸과, 딸이 어머니와, 시어머니가 며느리와, 며느리가 시어머니와 분쟁하게 될 것이다.”(눅 12:49~53)
많은 이들이 건성으로 읽고 넘어가는 내용이기도 하다. 그러나 십자가 복음을 알고 전인격적으로 하나님을 만난 후 전도자의 길을 걷게 되면 우리 인생에 반드시 체험하게 되는 말씀이다. 모든 것이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이다. 그러나 주신 하나님보다 선물이 더 좋아지면 우상이 된다. 100세에 받은 이삭이라는 독자가 우상이 되지 않게 하기 위해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번제물로 받치라는 시험을 하신다. 청지기관을 놓치면 우리는 반드시 하나님의 선물인 자녀를 나만을 기쁘게 하는 우상으로 만들어 버린다.
국가의 부름받은 군인이 부모와 형제를 위해 그들을 등지고 전쟁터로 떠나는 것처럼 현장의 영혼들을 살리기 위해 전도자의 삶을 살게 되면서 반드시 내 가족을 2순위로 내려놓아야 하는 선택의 순간이 온다. 그러나 그것이 바로 나와 내 집이 구원을 얻게 되는 약속의 길이다. 버릴 때 얻는 역설적인 진리.
내가 하나님의 나라를 선택할 때 가족들의 악악거림. “왜 엄마가, 아내가, 딸이, 며느리가 나를 위해 살아주지 않지?” 악악거리다 못해 오히려 천륜을 따르는 전도자는 이 땅에서 인륜을 저버린 자로 매도되어 그들에게 버림받고 외면을 당하게 된다.(눅 21:16~18). 이것이 우리가 예수를 따라 생명의 길을 선택할 때 반드시 지나가게 되는 십자가의 과정이다.
그 길을 묵묵히 걸어오면 많은 영혼들을 복음으로 낳는 열국의 어미가 되고 믿음의 조상이 된다. 믿음으로 일 세대. 아브라함처럼. 그래서 자식 다 키워놓고 그 자녀만 바라보다 공허하고 허전한 노후를 살 틈이 없게 된다.
가족이 자녀가 우상이 되어 있는 이 시대에 주님이 그리스도인에게 물으신다. “네가 나를 정말 사랑해? 그럼 내 양을 먹여볼래?” 처음엔 가정도 그들도 돌보며 최선을 다한다. 그러나 반드시 둘 중 한 가지만 선택해야 할 한계의 시간표가 온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가정이라는 옥합을 깨트리기 싫어서 양 떼를 포기해 버린다. 그러면 가정의 불화나 핍박은 절대 오지 않는다. 주님은 불을 던지러 왔는데 이 불이 붙지 않아 답답하다고 하셨는데..
그러나 내 가정만 화목한 것은 부러움과 시기의 대상이 될 뿐 현장을 살릴 수 없다. 또 다른 가정을 위해 내 가족이라는 옥합을 내려놓고 잃어버린 영혼을 선택하면 부활이 보장된 십자가의 길을 통과하게 된다. 하나님의 약속이 믿어지면 갈 수 있는 길. 믿어지지 않으면 죽었다 깨어나도 갈 수 없는 길이다.
주님은 분명히 말씀하셨다. 핍박이 올 것이라고. 그 후에 100배로 되돌려 주실 거라고. 그것을 믿는 자만이 가족의 핍박을 견디고 나아갈 수 있다. 내 친정 부모님과 시부모님을 2순위로 내려놓았더니 현장에서 그리스도의 피로 하나 된 수많은 부모님들을 얻게 하시고 내 자녀를 복음의 번제단에 내려놓았더니 수많은 자녀를 이산가족처럼 만나게 하셨다. 한 알의 밀알이 땅에 떨어져 썩으면 많은 열매를 맺고.. 이 과정에 나의 가족은 내 머리를 찌르는 가시관이 되었다가 나의 일을 동력하는 금 면류관으로 100배가 되어오며 성경이 진리임을 체험한다.
내가 전도자의 길을 갈 때 내 가족은 구레네 사람 시몬처럼 십자가를 억지로 지고 가는 자가 된다. 그것이 얼마나 축복인지 그들은 먼 훗날 알게 될 것이다. 현세에 깨닫고 즐거이 십자가를 같이 져준다면 얼마나 좋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