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유와 사유, 관습과 시장이 맞부딪히던 러시아 농촌의 현장을 해부한 한 권. 미르라 불린 마을 공동체를 중심으로 토지 분배와 재분배, 세금과 부채, 임대와 임금노동이 어떻게 얽혀 농민의 삶을 바꾸었는지 추적한다. 토지의 쪼개짐과 가족 공동체의 해체, 이동 노동의 확산, 기근이 남긴 충격, 그리고 대농과 소농의 수익성 비교까지 당시의 통계와 마을별 사례를 바탕으로 치밀하게 그려낸다.
이 책은 분기 소유와 공동 소유 같은 독특한 토지제도를 비교하며, 임대 계약과 조세가 농가 경영에 미친 영향을 숫자와 예산표, 수확량과 임금 자료로 보여준다. 그 과정에서 농민 내부의 계층 분화와 토지 집중, 공동체의 재분배 논쟁, 국가의 농민은행 정책과 귀족 신용제도가 낳은 결과를 입체적으로 설명한다. 결론부에서는 기근 이후 농촌이 농민 부르주아와 농촌 프롤레타리아, 그리고 자본주의적 대농으로 재편되는 길목에 서 있음을 통찰한다.
역사와 경제를 한데 묶어 읽고 싶은 독자, 토지정책과 농촌 불평등의 뿌리를 찾는 연구자와 정책 담당자, 협동과 공유의 가능성을 고민하는 실천가에게 특히 유익하다. 과거 러시아 한 마을의 경제사가 오늘의 농촌 소멸, 이농, 지역 격차를 읽는 렌즈가 될 수 있음을 설득력 있게 증명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