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감정은 시간이 지나도 희미해지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 고요한 자리에서 천천히 숨을 고르며, 다시 사랑으로 피어오를 순간을 기다립니다. 이 시집은 바로 그 기다림의 온도를 오래 바라본 끝에 탄생합니다. 마음속 깊은 골짜기를 지나온 이들이라면 누구나 품고 있을 그리움의 결을 조심스레 어루만지며, 그것이 다시 사랑의 얼굴을 띠는 순간을 담아내고자 합니다. 지나간 이름들이 스쳐 지나가고, 잊힌 풍경들이 다시 빛을 되찾을 때, 그 시간 속에는 언제나 말하지 못한 사랑의 숨결이 깃들어 있음을 느끼기 때문입니다.
그리움은 단순히 잃어버린 순간을 복기하는 일이 아니라, 한 사람의 마음이 어떻게 다시 살아 움직이는지를 보여주는 고요한 기록입니다. 오래전 흩날리던 계절의 향기, 말끝에 맺힌 떨림, 아무 말 없이 건네던 눈빛의 온도 같은 것들은 삶의 깊은 층위에서 우리를 이끌어갑니다. 그 감정들은 과거에만 머물지 않고, 현재의 우리를 다시 흔들며 미래를 만드는 힘이 됩니다. 그래서 이 시집은 그리움이 스스로 길을 찾아 사랑이 되는 여정을 담담하게 비춥니다. 비가 멎은 뒤 천천히 드러나는 흙내음처럼, 잃었던 감정이 조용히 제 빛을 되찾는 순간을 함께 바라봅니다.
이 시집을 펼치는 독자들의 마음에 작은 파문이라도 일어나기를 바랍니다. 커다란 파도가 아니어도 좋습니다. 그저 일상이라는 잔잔한 호수에 작은 돌 하나가 떨어지듯, 아주 은은한 흔들림이길 바랍니다. 그 흔들림이 마음속 깊은 곳에 잠겨 있던 기억을 깨우고, 다시금 누군가를 떠올리게 하고, 한 사람의 삶을 조금 더 따뜻하게 채워줄 수 있다면, 그 자체로 시가 건네는 위로가 완성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모두 사랑의 잔해를 품고 살아갑니다. 그 잔해는 때때로 찬란한 새싹을 틔우는 토양이 됩니다.
사랑과 그리움은 서로를 비추는 거울처럼 언제나 맞닿아 있습니다. 그리움이 없었다면 사랑의 크기를 모르고, 사랑이 없다면 그리움의 깊이도 헤아릴 수 없습니다. 이 책에 담긴 시들은 그러한 관계를 은유와 상징, 이미지로 풀어내며, 독자들의 마음속 풍경에 잔잔한 결을 남기고자 합니다. 바람 한 줄기가 지나간 자리에 남는 잎사귀의 떨림처럼, 말하지 못한 감정의 잔향이 오래 머무르는 시를 꿈꾸며 한 편 한 편을 써 내려갔습니다.
이 시집은 삶의 어둠을 외면하지 않지만, 그 속에서도 다시 피어나는 빛의 가능성을 믿습니다. 때로는 잃어버린 것들이 우리에게 더 큰 사랑을 가르치기도 합니다. 잊힌 이름들이 다시 떠오를 때, 우리는 비로소 그 이름들이 남긴 흔적에서 새로운 길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 길은 때로 아프고, 때로 따뜻하며, 때로 말없이 우리를 감싸 안습니다. 이 시들이 그런 길 위에서 동행하는 작은 등불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이 책을 여는 순간, 마음 한쪽에서 아주 작은 숨결이라도 다시 살아나길 바랍니다. 사랑이란 우리를 다시 일으키는 힘이며, 그리움은 그 사랑을 더욱 깊게 만드는 은밀한 손길입니다. 이 시집이 그런 감정들의 조용한 울림을 품고 우리의 하루에 잔잔히 스며들기를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