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를 연구하고 번역하며 밥을 벌어먹고 사는 나는, 종종 내가 '색안경'을 쓰고 세상을 본다고 느낀다. 우리는 눈으로 사물을 본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뇌로 본다. 그리고 그 뇌는 우리가 모국어로 습득한 '언어의 문법'이라는 필터를 통해 정보를 처리한다.
영어를 사용할 때의 나는 조금 더 논리적이고 직선적인 사람이 된다. 주어(I)를 명확히 밝히고 내 의견을 서두에 던져야 직성이 풀린다. 반면 한국어로 돌아오는 순간, 나는 관계 지향적인 사람이 된다. 나(I)를 내세우기보다는 우리(We)를, 혹은 주어를 아예 생략하며 상대방의 눈치를 살피고 문맥을 읽는다. 링귀스트에게 외국어를 배운다는 것은 단순히 단어를 암기하는 행위가 아니다. 그것은 새로운 색깔의 안경을 하나 더 갖는 일이며, 내 안에 또 다른 인격을 초대하는 일이다.
이 책은 언어학 교과서가 아니다. 문법 구조나 음운론을 따분하게 늘어놓을 생각은 없다. 대신 나는 언어라는 지도를 들고 세계를 여행하는 가이드가 되려 한다. 에스키모인들이 눈(Snow)을 부르는 방식에서 그들의 생존 전략을 엿보고, 존댓말의 유무에서 사회의 위계질서를 파헤칠 것이다. 오역 한 줄이 어떻게 역사를 뒤바꿨는지, 그리고 AI가 번역하는 시대에 인간의 언어는 어떤 가치를 지니는지 이야기할 것이다.
언어는 인간이 발명한 가장 강력한 도구이자, 우리를 가장 인간답게 만드는 영혼의 지문이다. 이제부터 펼쳐질 이야기들이 당신이 무심코 내뱉던 말들의 뒷면을 들여다보는 흥미로운 돋보기가 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