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9년 세기말 블루스의 숨결
1999년의 서울은 오래된 필름처럼 약간의 먼지를 머금고 있었다.
새 천년이 오고 있다는 말은 누구에게는 설렘이었고, 누구에게는 말로 다하지 못할 복잡한 불안이었다.
대도시의 아파트 단지 곳곳에서 중산층의 삶은 일정하게 맥을 짚고 있었지만, 그 규칙적인 생활 아래에서는 작은 금이 보이지 않게 퍼지고 있었다.
다들 입으로는 “세상이 좋아지고 있다”고 말했지만, 마음속에서는 조금씩 다른 목소리가 울렸다.
인터넷이 보급되며 세상은 가까워졌지만, 사람들은 오히려 서로에게서 멀어졌다.
삶의 편리함은 늘어났으나, 편리함 속에서 정작 자신이 어디에 서 있는지 잃어버리는 순간들이 잦아졌다.
중산층은 안정이라는 이름의 울타리 안에서 살았지만, 울타리는 점점 높아져 바깥을 향한 시선을 가로막았다.
고독은 그 울타리의 그림자처럼 천천히 드리웠다.
하루의 무게를 짊어진 채 퇴근길에 올라도, 손에는 최신 휴대폰과 월급 명세서가 있었지만 마음 한구석에서는 설명할 수 없는 공허가 피어났다.
그 공허를 메우기 위해 사람들이 찾은 것은 거창한 이상도, 대단한 야망도 아니었다.
바쁘게 흘러가는 일상 속에서 잠깐 시선을 돌릴 수 있는 틈,
누군가의 시선에서 벗어난 순간에만 피어나는 사적인 욕망과 작은 꿈들,
그리고 고립된 시간 속에서 자연스럽게 싹트는 몽상의 세계였다.
현실의 틈 사이로 스며드는 그 몽상은, 때로는 새로운 희망의 언어가 되었고,
때로는 누구에게도 털어놓지 못한 은밀한 욕망의 집으로 이어졌다.
1999년의 중산층은 그렇게 변해 갔다.
사회가 발전할수록 마음은 남몰래 쪼그라들었고,
이기주의 속으로 파고들수록 사람들은 각자의 작은 세계에서 더 깊은 꿈을 꾸기 시작했다.
그 해의 사람들은 눈에 보이지 않는 고립의 물줄기 속에서
자신이 잃어버린 무언가를 찾기 위해,
또는 잃어버렸다는 사실조차 잊기 위해,
끊임없이 내면으로 몸을 기울였다.
이 이야기는, 바로 그 순간들의 기록이다.
새 천년을 하루 앞둔 어느 겨울 저녁,
아무도 모르게 흔들리던 마음들의 음영을 끄집어낸 한 시대의 초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