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한복판에 자리 잡은 남산은 마치 도심의 심장처럼 고요히 숨 쉬고 있다. 고층 빌딩의 숲, 매연과 소음이 가득한 거리, 바쁘게 흐르는 사람들 사이에서 남산은 조용히 존재감을 드러낸다. 높지도 않지만 낮지도 않은 그 산은 늘 제자리에 있으면서도 계절 따라, 시간 따라 조금씩 다른 얼굴을 보여준다.
동부이촌동으로 이사한 후 어느 날 문득, 남산이 궁금해졌다. 수없이 지나쳤지만, 마음으로 들여다본 적은 없었다. 어릴 적 소풍지로, 대학 시절 데이트 코스로, 혹은 타워 전망대에서의 서울 야경으로만 기억되던 그곳.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이제 나는 남산을‘풍경’이 아닌‘이야기’로 걷고 싶어졌다.
걷는다는 것은 단순히 발을 옮기는 일이 아니다. 그 안에는 멈춤이 있고, 사유가 있고, 기억이 있다. 남산을 걷는 일은 내 삶을 돌아보는 일이었고, 잊고 있던 감정과 다시 연결되는 길이었다. 나무의 그림자 아래에서 지난 시간을 되새기고, 계단 끝에서 다가올 날을 떠올린다. 그렇게 나는 남산에서‘나’를 다시 만났다.
이 책은 남산을 걷고, 느끼고, 바라본 기록이다. 길을 따라 떠오른 생각들과, 만난 풍경들, 그리고 그 위에 내려앉은 조용한 깨달음들. 언젠가 나처럼 남산을 다시 찾게 될 누군가를 위해, 나는 이 기록을 남긴다.
남산은 기다리고 있다.
언제든 다시 걷고 싶은 마음이 들 때,
아무렇지 않게 길을 내어주는 그 산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