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삶’이 ‘신’이고 ‘유일한 길’입니다.
여기를 벗어나서는 어떤 것도 이룰 수 없습니다.
그런데 그 현실은 여전히 괴롭고 외롭기만 합니다.
그러니 이제 어떡할 것인가? 삶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것도 긴 세월, 수많은 경험의 아픔과 기쁨, 희망과 절망의 여정을 고스란히 받아들이고 체화해야만 합니다.
그 과정이 깊어질수록 우리의 삶은 깊어지고 맑아집니다. 비로소 진실을 보는 눈이 떠지고 그 속에서 고통을 극복할 힘이 생기며 욕망의 정체를 알아차리고 진실한 행복을 추구할 수 있는 지혜가 생깁니다.
여기서 문학의 기능이 다시 부활합니다. 문학은 누군가의 진실한 경험입니다. 온 인류의 지혜이고 삶이며 인생입니다. 그 경험을 진실의 몸으로 경험할 수 있는 것이 문학입니다.
또한 문학은 직설적인 가르침을 주는 훈계조의 산문과는 그 궤를 달리합니다. 당장은 비법을 직접 알려주는 가르침 등이 빨라 보이고 좋아 보이지만 깊숙한 내면의 나는 그것을 받아들이는 데 한계가 있습니다. 서두르고 허둥대는 그 심리가 오히려 진실을 대면하기 힘들게 만듭니다.
서두르는 그 심리도 결국은 나의 생각일 뿐입니다. 그러하기에 또 다른 생각인 변화하고자 하는 열망과 충돌하고 맙니다. 즉, 생각끼리의 충돌이 일어나면서 내면은 극심한 혼란 상태가 되고 삶은 그 혼란을 투영하고 반영하면서 전개됩니다.
그렇다면 어떠한 길도 없다는 것인가?
그렇지 않습니다. 서두름과 허튼 욕망이 일을 망칠 뿐입니다. 방법은 긴 세월의 ‘인생’을 나의 것으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 과정에서 수도 없이 벌어지는 희로애락의 여정을 기꺼이 껴안아야 합니다. 그리고 거기에 더해 남의 삶, 인류의 지혜를 기꺼이 받아들이고 체득시키는 것입니다.
내면의 ‘나’에게 시간을 주어야 합니다
삶이 긴 세월 서서히 영혼으로, 내면으로 침잠되어 들어가 나의 경험이 되고 지혜가 되는 것처럼 문학도 그러합니다. 당장 변하겠다는 욕망을 버리고 남의 경험, 인류의 지혜가 서서히 나의 영혼에게 다가오게 허용하고 그 진실에 승복하게 해야 합니다.
내면의 나는 진실로 완고하고 고집스럽습니다. 그 ‘나’는 수많은 인생의 경험과 문학적 ‘카타르시스’를 통해 서서히 진화하고 변화합니다. 오늘의 문명을 만든 인류의 지혜가 무엇으로 이루어졌는가를 보면 알 수 있는 사실입니다.
위의 소설들은 그러한 고민과 긴 세월의 집필 끝에 써 내려간 것들입니다. 모두 30여 편의 단편과 장편 소설 등이 준비되어 있는데 한 권씩, 그리고 조금씩 단편집의 형태로, 혹은 장편소설의 형태로 출간될 예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