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작품은 노년의 여성 ‘세희’와 알츠하이머를 앓는 노모의 동거를 중심으로, 돌봄과 책임, 생의 결정권이라는 문제를 정면으로 다룬 단편소설이다. 평생 홀로 살아온 세희는 노모를 보살피는 과정에서 점차 소진되고, 여기에 폐암 말기 판정이라는 개인적 위기가 겹치며 삶의 선택 앞에 놓인다.
작품은 한국 사회의 제도적 현실인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중요한 서사 장치로 삼되, 이를 정책적 논의로 환원하지 않는다. 대신 가족 내부에서 발생하는 돌봄의 불균형, 연명과 존엄 사이의 긴장, 그리고 ‘천륜’이라는 이름으로 개인에게 전가되는 윤리적 부담을 섬세하게 포착한다. 스위스의 의사 조력 존엄사 제도는 탈출구처럼 제시되지만, 끝내 선택되지 않는 길로 남으며 서사의 핵심 갈등을 형성한다.
이 작품은 존엄사를 찬반의 문제로 단순화하지 않고, 질병과 노화, 가족 관계가 얽힌 현실 속에서 개인이 감당해야 하는 결정의 무게를 조용히 응시한다. 죽음의 문제를 통해 오히려 살아 있는 자의 윤리와 책임을 질문하는 이 소설은, 동시대 한국 사회의 돌봄과 생사 결정 구조를 문학적으로 사유하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