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머 리 에
지구상 수많은 다른 존재들처럼, 달랑 던져진 ‘나’라는 존재는, 모여 피는 꽃들이 실하고 아름다운 것 같이,
우리라는, 울타리에서 지내야 인간다운 삶을 누린다.
사람은 또한, 다른 생명체와 달리 예술이라는 세계 속에 살고 있다.
단지 관심이 덜하거나 다른 일상을 이유로 시간과 노력을 전업
작가보다는 덜 들일 뿐일 것이다.
나는 개인적으로 사람은 누구나 예술가이며, 작가이자 책, 아니 글 같은 존재라 생각한다.
혹자는, 여기 모인 우리가, 비록 아마추어 작가 축에도 못 든다고 여길지 모르지만,
글을 좋아하는 그 심정 하나로 만난 사람들이 모여 동인 글모음 집을 세상에 내보내게 되었다.
이 책을 출발점으로 더 나은 방향으로, 우리 '느루'라는 글쓰기 모임이 좋은 결실을 지속적으로 보길 바라며,
첫 동인 집 '우리, 아침 햇살처럼 시작해요'란 시집 발간을 자축한다.
아래에 각 작가의 10편 시 글 중 각각 2편을 소개한다.
1. 물망초: 청동 임전택작
[ 물망초 ]
내 이름을 잊기엔
내게 남은 여름날이 너무 짧아
달빛 좋은 이 밤에도
차마, 내 모습을
여기, 이 물가에는 못 비추리
네 모습을 찾기엔
내게 없는 그 마음이 네게 비칠까
구름 낀 이 밤에도
차마, 내 이름을
여기, 이 냇가에는 못 띄워 보내리
*출처: 청동 임전택 삶의 자연을 그리다 중에
2. 두부: 구명회 작
[ 두부 ]
길이 없는 숲에서 길을
잃었다고 허둥대는 순간이 있었지
등골을 타고 흐르는 식은땀 시냇물로 흐르던
날들이 쌓인 오늘
한줌 흙으로는 만들 수 없었던
지난한 꿈이 말라가고
있는 유치원의 테이블 같아
누군가는
스케치북 페이지를 뒤져 완성하지 못한 집
손등의 낡은 주름을 적셔
지붕을 그리지
그것도 희망이라고 개미가
아침을 끌고 가면
미로 같은 개미집
흙 한줌과 햇살 한줌이 공존하는
그리다 만 그 집에서
7시경 두부를 썰면
하얀 두부 속 좁쌀 같은 숨구멍
괜찮다, 너도 길을 잃었구나
수많은 나
나들이 길을 잃고
있다고 위로하는 아침
3. 방하착: 미서 김동철 작
[ 방하착放下着 ]
잡힐 듯 잡힐 듯이
잡히지 아니하는
허깨비 형상 쫓아 살아온 버거운 맘
남보다 잘살아보자 욕심慾心때문 아니였나
힘들면 쉬어가고 소나기는 피해야지
행여나 뒤처지나 공연한 근심걱정
미련한 어리석음도 내려 놓고 가라네
배워서 쌓아가며
물어서 판단하고
어질게 행동하고 너그럽게 베푸는 맘
노력努力은 수단手段이 아닌 그 자체가 目的이니
올때도 빈손이고
갈때도 빈손이니
힘에부친 무거운짐 내려놓고 살라시네
텅빈듯 가득한 겸손 하늘의 이치 아니던가
방하착放下着 : 불교 선종에서 “마음을 내려놓아라”라는 뜻
4. 그렇게 가는 거야: 신애경 작
[ 그렇게 가는 거야 ]
가보지 않은 길을 갈 때는 용기가 필요하다
첨벙, 물속에 발을 담근다
물살이 세다
심호흡하고 중심을 잡는다
물속 돌이끼가 미끄럽다
쓰러질 듯 위태롭다
냇가 쪽 나뭇가지에 손을 뻗는다
드디어 모래톱에 닿았다
그제야 한 숨을 내쉰다
건너온 길을 바라본다
긴장한 마음을 이제야 내려놓는다
5. 너: 이윤선 작
[ 너 ]
불안한 꽃을 보듯
너를 찾는 게 일상이었다
눈 속에 눈물이 가득 차
넘쳐흐를까를 염려하며
일상의 고독 속에서, 불안한 꽃을 보면
나는 너를 찾아 나섰다
별빛이 지워지는 아침에
나와 같은 너를 찾아
이슬에 젖는 잡초가 되었다
찻잔 속에 별이 잠기고
햇살이 밝게 담기면
불안한 너의 입술이 생각나
빈 잔을 두 손 모아 잡았다
꽃비가 휘날리는
둘레길 홀로 걷는 걸음
너를 우연히 만났다
불안한 벤치에 앉아
홀로 우는 너의 곁에 머문 내일과 함께
나는 꽃의 길에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