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계의 그림자”를 읽고 나면,
가슴 한구석에 아주 작은 불씨 하나가 남는다.
그 불씨는 차갑지도, 뜨겁지도 않은 온도로 오래오래 남아서
문득문득 “나는 어디까지가 나이고, 어디서부터가 그림자일까”라는 질문을 되뇐다.
이 책은 겉보기엔 짧다.
38페이지.
하지만 그 38페이지는 마치 끝없이 펼쳐진 사막 위 은하수처럼,
한 걸음 내디딜 때마다 발밑의 모래가 무너지며 새로운 밤하늘이 드러나는 느낌이다.
진오는 태어날 때부터 ‘잔상’을 안고 산다.
어린 시절 병원 천장에서 본 조선 시대 마을, 죽은 자들의 눈빛,
“세상 사람은 감당 못 하니 피해야 해”라고 속삭이던 목소리.
그는 그 잔상을 지우기 위해 평생 무당을 피해 다녔다.
그런 그가 소현을 만난 순간, 운명은 이미 장난을 시작했다.
소현은 어묵 국물 김 사이로 웃는, 지극히 평범해 보이는 여자였다.
그런데 그 미소 뒤에 숨겨진 그림자가 조금씩 스며들 때마다
진오는 깨닫는다.
자기가 가장 피하려 했던 세계가,
자기가 가장 사랑하게 될 사람의 피부 아래에서 꿈틀대고 있다는 것을.
이후 이야기는 두 갈래로 갈린다.
하나는 타락으로,
하나는 구원으로.
소현은 결국 ‘포항 용궁신당’의 화려한 보살이 된다.
돈과 욕망으로 포장된 그 세계는 진오가 가장 혐오하던 형태의 그림자였다.
그리고 유미는,
300년 무속 혈통의 마지막 후계자로서 신내림을 거부하려다
미칠 듯한 고통 속에서 진오라는 ‘인간 앵커’를 만난다.
진오는 무당이 아니다.
그는 굿도, 부적도, 주문도 쓰지 않는다.
그저 손을 잡아주는 것만으로
잡귀를 재로 만들고, 신내림의 폭주를 멈추고,
유미가 ‘신을 선택하는 사람’이 되게 한다.
이건 무속 역사에도 없는 ‘네 번째 길’이다.
미치거나, 죽거나, 무당이 되거나?
그 외의 길은 없다고 믿던 세계에
진오라는 변수 하나가 떨어진 순간,
전설이 시작된다.
읽다 보면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우리가 사랑이라고 부르는 감정은
어쩌면 우리가 가장 두려워하는 그림자를
끌어안고 춤추는 용기일지도 모른다고.
마지막 페이지,
진오와 유미가 손을 잡고 강북 골목을 걷는 장면에서
책을 덮으면
여러분의 가슴에도
따뜻한 체온이 남아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체온이
여러분을 다시 ‘경계’ 너머로 데려가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그러나 단단하게 잡아줄 사람을
문득 떠올리게 될 것이다.
“빛은 그림자를 만들고,
그림자는 빛을 더욱 선명하게 한다.
우리는 그 사이에서 비로소 온전해질 수 있는지 모른다.”
38페이지.
그러나 그 안에 담긴 우주는
여러분의 남은 인생보다 더 깊다.
한번 열어보세요.
그림자가 여러분을 반길지도 모릅니다.
아니면,
여러분이 그림자를 안아줄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