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은 해바라기였다. 오가와 미메이의 동화 〈황금빛 굴렁쇠〉의 서문, 〈동화의 시적 가치〉를 통해 라프카디오 헌이라는 이름을 처음 접하게 되었다. 라프카디오 헌이, ‘해바라기꽃’을 보고 웨일스에서 보냈던 소년 시절의 어느 날을 떠올리며, 그때를 그리워했다는 내용이었다. 그것이 발단이 되어 NHK 아침드라마 〈바케바케(ばけばけ)〉가 다가왔다. 라프카디오 헌과 그의 아내 고이즈미 세츠를 모델로 한 드라마이다.
사람을 만나는 것에는 인연이 있어야 한다는 말이 있다. 책과의 인연도 그와 같다는 것을 여러 번 경험했다. 마음속에 하나라도 씨앗을 품고 있어야 그 다음 풍경이 보이는 법이다. 라프카디오 헌을 만나고 그와 친해지는 데에도 그러한 단계적인 절차가 있었다. 한번 알게 되면 가 보고 싶어 하는 아이처럼 하나하나 따라가다 보니 이 글을 만나게 되었다.
이 글은 아내 세츠가 남편을 회상하며 쓴 글이다. 세츠가 들려주는 라프카디오 헌의 일본에서의 일대기이다. 혼신의 힘을 다해 글을 써 내려가는 헌의 모습을 보면서 앞으로 한 줄의 글이라도 경건하게 대해야겠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편협하고 외골수인 남편의 심사를 잘 헤아려 집필 활동을 돕는 세츠의 헌신적인 모습에 감탄했다. 당연히 이 글을 읽고 난 후의 드라마는 달리 보였다. 겅중거리는 헌의 걸음걸이, 눈이 나빠 책상에 고개를 파묻듯이 숙이고 글을 쓰고 있는 그의 모습이 더욱 생생하게 다가왔다. 눈빛만 보고도 그의 심사를 헤아릴 정도가 되었다. 책 속의 풍경인지 드라마인지 모를 만큼 녹아들었다.
재미있는 것은 라프카디오 헌과 이미 몇 번의 스침이 있었다는 점이다. 고이즈미 야쿠모라는 이름으로였다. 헌이 세츠와 결혼하고 일본에 귀화하며 아내의 성을 따라 바꾼 이름이 고이즈미 야쿠모이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라는 시구절처럼 이제야 내게 꽃으로 다가왔다. 이 꽃향기가 또 나를 어디로 이끌는지 벌써부터 가슴이 두근거린다. 이 글 속의 어느 한 단어, 어느 한 구절이 나풀나풀 날아가 당신의 마음 자락에도 살포시 내려앉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