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어머니는 평생 땅 한 평 가져본 적 없는 소작농으로 사셨다. 거센 잡초와 맞서며 생을 버텨 내시던 그 어머니의 모습은 오래도록 내 마음속에 풀의 생명력처럼 자리 잡았다. 어떤 바람에도 쉽게 꺾이지 않고 다시 일어서는 풀의 기운이, 바로 어머니의 얼굴과 손끝에서 자라나고 있었다.
최근 오래된 일기장을 넘기다 스물일곱 살 신학도 시절에 써 두었던 시 한 편을 발견했다. 척박한 땅에서도 뿌리를 내리고 싹을 틔우는 민초에 대한 노래였다. 그 끈질긴 생명의 이미지는 곧 어머니의 삶을 비추는 은유였고, 지금 다시 읽어 보아도 그 마음은 변함없었다. 그 시를 다시 펼치는 순간, 내 어머니가 걸어오신 길이 한 줄기 빛처럼 선명히 되살아났다.
어머니에 관한 기억의 조각들은 나 혼자 떠올릴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막내 동생이 들려준 이야기와 고명딸 같은 여동생이 더해준 장면들이 하나둘 모여 이 책의 살과 뼈가 되어 주었다. 책은 내가 썼지만, 기억은 남매들이 함께 빚어낸 공동 저작이었다. 그림을 인공지능에게 맡기면서 때로는 마음이 울렸고, 때로는 과장된 장면들에 소리 내어 웃기도 했다. 기술이 그려 준 우연의 선들이 오히려 잊고 지낸 감정의 결을 다시 깨워 주었다.
2025년 12월, 우리 어머니는 이 그림책을 통해 남매들 곁으로 다시 돌아오셨다. 삶의 기억이 언어와 그림 속에서 다시 숨을 고르고 일어서는 모습을 바라보며, 우리는 그 시절의 어머니를 다시 한 번 품에 안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