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은 나를 멈추게 했지만, 디지털은 나를 다시 뛰게 했다.
- 시련 뒤에 찾아온 ‘진짜 인생’의 시작에 대하여 -
1. 멈춰버린 시곗바늘
1979년 11월 5일, 찬 바람이 불기 시작하던 그날 나는 에쓰오일(S-OIL)에 입사 공무부 자재관리와
업무와 총무부에서 건물 관리 업무를 했다. 그로부터 35여 년, 나의 삶은 정직하게 돌아가는 공장의
기계와 같았다. 결혼도 하고 자녀 1남 1녀의 가족을 부양하고, 직장인의 책임을 다하며 앞만 보고 달렸다.
직장 생활 중에 두 자녀 모두 출가를 시키고 2012년 3월, 정년퇴직하던 날 나는 비로소 '나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겠다는 설렘에 부풀어 있었다. 퇴직 후에는 정유회사 저장시설 보수 작업 협력업체에서도
근무도 하고, 멋진 노후, 여유로운 여행, 그리고 평온한 휴식이 기다릴 줄 알았다.
하지만 인생은 결코 계산대로 흐르지 않았다. 2018년 건강검진에서 내게 날아온 것은 '전립선암'이라는
청천벽력 같은 진단서였다. 2019년 1월 2일, 새해 아침에 수술을 잘하고 건강 회복을 위해 신경을
무척 많이 썼지만, 이듬해에는 전립선암이 재발하여 33회에 걸친 고통스러운 방사선 치료가 이어졌다.
활기차던 나의 세계는 병원 천장과 약봉지 속으로 좁아졌다. "왜 하필 나인가?"라는 원망이 가슴을 채웠고,
화려하게 피어날 줄 알았던 나의 노후는 그렇게 시들어가는 듯했다. 암이라는 거대한 장벽 앞에
나의 인생 시계는 그대로 멈춰버렸다.
2. 낯선 세상, 디지털이 건넨 손
병마와 싸우며 몸이 회복될 무렵, 문득 거울 속의 나를 보았다. 암은 내 몸의 일부를 떼어갔지만,
내 삶의 의지까지 앗아가게 둘 수는 없었다. 2021년 가을, 나는 무거운 몸을 이끌고 ‘내일 설계 지원센터’의
문을 두드렸다. 그곳에서 마주한 것은 '시니어 IT 기초교육'이라는 낯선 세계였다.
평생 아날로그 방식으로 살아온 내게 스마트폰과 컴퓨터는 정복하기 힘든 에베레스트산 같았다.
손가락은 마음처럼 움직이지 않았고, 돌아서면 잊어버리는 명령어들에 좌절하기도 했다.
그러나 신기한 일이 벌어졌다. 작은 화면 속에서 세상과 소통하는 법을 배우자, 병실에 갇혀 있던
나의 자아가 다시 밖으로 꿈틀대며 나오기 시작한 것이다.
내일 설계 지원센터에서 시작하여 북구 평생학습관에서 평생 학습대학 SNS 소통학과 과정을
3년간 개근하여 개근상도 받고, 울산시청자미디어센터, 중구 평생학습관, 중구 문화의 전당 등
SNS를 배우고, 사진을 찍고, 글을 올리는 과정은 단순한 기술 습득이 아니었다. 그것은 암이라는
절망의 늪에서 빠져나오기 위한 처절하고도 아름다운 '밧줄'이었다. 아날로그의 따뜻한 감성에
디지털이라는 날개를 달자, 멈췄던 나의 시곗바늘이 다시 경쾌한 소리를 내며 돌아가기 시작했다.
3. 칠순, 다시 현역이 된 디지로그의 삶
그로부터 4년이 흐른 지금, 나는 암 환자가 아닌 '울산의 홍보와'으로 불린다. 울산의 중구, 남구, 울주군,
모든 지역을 누비며 시민들의 목소리를 전하고, 태화강의 철새를 기록하며, 울산도서관,
울산 어린이·청소년도서관, 중구 문화의 전당, 울산시설관리공단, 울산 남구 치매안심센터에서
봉사의 기쁨을 누린다. 2025년 말 기준으로 쌓인 1,177시간 이상의 봉사 시간은 내가 살아있음을
증명하는 훈장과도 같다.
2023년 중구청장 표창과 2025년 울산광역시장 표창은 단순히 열심히 살았다는 증거를 넘어,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며, 시련은 새로운 기회의 문"이라는 사실을 증명해 준 감사한 결과물이다.
나는 이제 아날로그 세대의 깊은 연륜과 디지털의 편리함을 융합한 '디지로그(Digilog)'의 삶을 산다.
이 책은 칠순의 나이에 암을 이겨내고 제2의 전성기를 맞이한 나의 기록이자, 은퇴와 노후,
그리고 예기치 못한 질병 앞에 낙담한 이들에게 건네는 위로이다. 나의 이야기가 누군가에게는
"나도 다시 시작할 수 있다"라는 희망의 불씨가 되길 바란다.
암은 분명 나를 잠시 멈추게 했다. 하지만 그 멈춤이 있었기에 나는 더 높이 비상할 준비를 할 수 있었다.
자, 이제 시곗바늘을 다시 돌릴 시간이다. 나의 '디지로그' 인생 2막이 지금 펼쳐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