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5년 7월 15일, 프랑스 월간지 『주 세 투(Je sais tout)』에 한 편의 단편소설이 실렸다. 「아르센 루팡의 체포」라는 제목의 이 작품은 대서양 횡단 여객선 위에서 펼쳐지는 기상천외한 도둑의 이야기를 담고 있었다. 당시 마흔 살의 무명 작가였던 모리스 르블랑(Maurice Leblanc, 1864-1941)은 이 단편 하나로 일약 프랑스 문단의 총아가 되었고, 아르센 루팡이라는 캐릭터는 단숨에 프랑스 대중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이후 르블랑은 독자들의 열광적인 호응에 힘입어 연작을 이어갔고, 1907년 6월 10일 마침내 첫 아홉 편의 단편을 묶어 『괴도신사 아르센 루팡(Arsène Lupin, gentleman-cambrioleur)』이라는 제목으로 단행본을 출간했다. 이 한 권의 책은 20세기 추리문학의 흐름을 바꾸어 놓았으며, '괴도'라는 장르의 원형을 창조해냈다.
모리스 마리 에밀 르블랑은 1864년 12월 11일 프랑스 노르망디 지방의 루앙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 에밀 르블랑은 선박 사업을 운영하는 상인이었고, 어머니 마틸드 블랑슈 브로이는 부유한 염색업자 집안 출신이었다. 르블랑의 출생은 당대 프랑스 문학의 거장 귀스타브 플로베르의 형인 아킬 플로베르 박사가 직접 담당했을 정도로, 그는 루앙의 중산층 지식인 가정에서 성장했다. 어린 시절 르블랑은 플로베르와 기 드 모파상 같은 문학 거인들을 자연스럽게 접할 수 있는 환경에서 자랐으며, 이러한 경험은 훗날 그의 문체에 깊은 영향을 미쳤다.
1870년 프로이센-프랑스 전쟁이 발발하자 아버지는 어린 르블랑을 스코틀랜드로 피신시켰다. 전쟁이 끝난 후 귀국하여 루앙의 코르네유 고등학교에서 학업을 마친 그는 아버지의 뜻에 따라 카드 제조 공장에서 일했으나, 문학에 대한 열정을 억누를 수 없었다. 1888년 파리로 상경한 르블랑은 법학을 공부했지만 곧 이를 포기하고 작가의 길을 걷기로 결심했다.
초기 르블랑은 플로베르와 모파상의 영향을 받은 심리소설과 사실주의 문학을 추구했다. 1887년에 발표한 첫 작품 「한 여인」을 시작으로 여러 편의 진지한 문학작품을 발표했으나, 비평적 호평에도 불구하고 상업적으로는 크게 성공하지 못했다. 당시 그는 스스로를 '순문학 작가'로 인식했으며, 대중소설이나 추리소설은 자신의 영역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르블랑의 인생을 바꾼 전환점은 1905년에 찾아왔다. 월간지 『주 세 투』의 편집장 피에르 라피트가 그에게 단편소설 한 편을 의뢰한 것이다. 라피트는 당시 영국에서 인기를 끌고 있던 아서 코난 도일의 셜록 홈즈 시리즈와 E.W. 호너의 래플스 시리즈 같은 범죄소설을 프랑스식으로 재해석한 작품을 원했다. 르블랑은 다소 마지못해 이 의뢰를 수락했는데, 원래 그가 구상한 캐릭터 이름은 '아르센 로팡(Arsène Lopin)'이었다. 그러나 같은 이름을 가진 지역 정치인의 항의로 인해 '루팡(Lupin)'으로 변경되었다. 이렇게 탄생한 아르센 루팡은 르블랑의 예상을 뛰어넘어 폭발적인 인기를 얻었다.
이후 르블랑은 평생에 걸쳐 17편의 장편소설과 39편의 중단편소설, 그리고 4편의 희곡 등 루팡 시리즈를 집필했다. 1908년 1월 17일에는 프랑스 최고 훈장인 레지옹 도뇌르 훈장을 수여받았으며, 1918년에는 노르망디 해안의 에트르타에 '클로 루팡(Clos Lupin)'이라 이름 붙인 저택을 구입하여 창작 활동에 전념했다. 말년에 르블랑은 "루팡이 나를 어디든 따라다닌다. 그는 내 그림자가 아니다. 내가 그의 그림자다"라고 토로할 정도로, 루팡이라는 캐릭터에 자신의 정체성이 잠식당하는 느낌을 받았다고 한다. 1939년 나치 독일의 침공이 임박하자 에트르타를 떠나 페르피냥으로 피신했고, 1941년 11월 6일 그곳에서 폐렴으로 세상을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