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의 사역에 있어서 산상수훈은 대단히 중요한 부분을 찾이하고 있다. 산상수훈을 가르친 후에 제자들을 선택하였고 산상수훈을 통해서 구약의 율법을 제대로 적용하지 못하는 율법주의자들을 향해 복있는 자의 개념, 살인의 개념, 간음의 개념을 바꾸어 주었다. 예수님은 당시에 종교계 지도자들을 향하여 너희가 교인 하나를 얻기 위하여 바다와 육지를 두루 다니다가 생기면 배나 더 지옥자식이 되게 한다고 하였다. 회칠한 무덤이여! 너희가 잔과 대접의 겉은 깨끗하되 속에는 탐욕과 방탕이 가득하다고 하였다.
예수님의 가르침은 오늘날 주님의 뜻대로 살려고 하는 오늘날의 제자들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되어야 한다. 특히 목회자들에게는 더욱 더 엄격하게 적용되어야 한다. 나는 성도를 향하여 욕심을 품고 대하지는 않았는지, 성도를 예수 그리스도의 신부로 만들기 위해 해산의 고통을 감당하고 있는지, 그렇치않으면 내 교인, 내 사람으로 만들기에 온 힘을 쏟고 있는지 우리는 자문자답을 해야 한다.
6,000년 전에 첫 아담과 하와를 타락시키고 미혹시켰던 사단, 마귀는 예수님께서 공생애를 살려고 하자 세 가지 시험을 하였다. 마귀가 보여준 것들, 네가 내게 절하면 이 모든 것을 준다고 약속하고 있는 사단의 역사, 오늘날 많은 교회들이 교회성장이라는 이름아래 행하고 있는 많은 것들에 대해 우리는 심각하게 생각해 보아야 한다,. 마지막 때에는 사단의 일군들도 의의 일군으로 가장하고 표적과 기적과 불의의 모든 속임수로 믿는 자들조차도 미혹할려고 하기 때문이다.
과연 이 시대의 다른 예수는 무엇인가?
이 시대의 다른 복음은 무엇인가? 다른 성령은 무엇인가?
신앙생활을 방해하는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 어떤 것인가?
이제 우리는 주님에 대한 첫사랑으로 돌아가야 한다. 과연 주님이 이 시대에 우리에게 주는 가르침과 교훈은 무엇인가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구약시대에는 선지자들과 제사장들을 통하여 당신의 뜻을 계시하신 것처럼 오늘날에는 보혜사 성령께서 이 시대의 하나님의 종들을 통하여 생명의 복음이 증거되고 있다. 설교자는 자기의 설교를 주님이 들어서 몇 점 정도일까를 생각해 보며 설교하고 가르치고 배워야 한다.
이 설교집은 원전(스테판본, 알랜드사본)을 참고로 하여 최대한 성경의 내용을 살릴려고 노력하였다. 특히 신학생들이나 목회자들이 성경연구를 함에 있어 도움을 주기위해 원전을 직접 옮겨 놓기도 하고 단어에는 국제공통번호를 참고로 하였다. 따라서 실제적으로 성경을 연구하는데 도움을 줄 것이라 믿는다. 좀더 깊은 내용을 연구하고 싶으면 콘코단스 사전과 스트롱사전을 참고하면 더 깊은 내용을 알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
이제 21세기가 밝아왔다. 교회도 밀레니엄이라 하여 여러 가지 목회 대안이 나오고 있다. 그러나 한 가지 내게 분명한 것이 있다면 사람이 바뀌고 세대가 바뀐다고 할지라도 복음은 일방적인 구원과 전적인 은혜로 이루어지는 것이다. 복음을 알지 못하는 자들은 아직도 양심에 화인을 맞아 있고 하나님을 찾지도 아니하고 부르지도 않고 있기에 이들은 변화시킬 것들은 말씀과 성령의 능력외에는 아무 것도 없다고 본다. 따라서 아무리 세대가 바쁘게 돌아가고 있다고 할지라도 본질적인 말씀의 선포는 절대 양보할 수 없는 것들이다. 많은 사람들이 주일설교 같고는 신앙생활을 제대로 못한다고 하는데 나는 결단코 그렇치 않다고 본다. 사실 목사가 최고의 열정과 혼신의 힘을 쏟는 것이 무엇인가? 주일설교이다. 주일설교는 목사의 삶과 지식과 하나님을 향하는 마음과 성도들을 향한 애정과 교훈이 함축되어 있는 것이다.
이제는 배운 말씀을 깊이 상고하고 되새기는 인고의 과정이 필요하다. 현란한 설교에 취해 그저 좋아 마음이 붕 뜬 신앙생활이 아니라 한 마디 한마디가 생명의 되어 피가 되고 살이 되는 생명의 말씀이 우리의 삶을 끌고 가야 한다.
다시 성경으로 돌아가야 한다. 말씀의 본질 앞에 무릎을 꿇고 순종하고자 하는 결단, 세상 무엇과도 바꾸지 않겠다는 의자가 있어야 한다. 산상수훈을 통해서 성숙된 천국 백성의 삶을 살기를 바란다.
민족의 복음화를 바라보며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윤영문 목사가 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