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분께서 니고데모에게 이르시되 “너는 이스라엘의 선생이면서 이런 것들을 알지 못하느냐?”라고 말씀하시더라.-요한복음3:10
인류는 오랫동안 자신을 둘러싼 세계의 질서를 해석하려 애써 왔다. 별빛 아래서 신들을 상상하던 고대의 인간도, 형이상학적 구조를 탐구하던 플라톤도, 존재의 본질을 묻던 중세의 신학자도, 역사라는 흐름 속에서 정신의 자기전개를 그려낸 헤겔도, 모두 하나의 질문을 향해 걷고 있었다. 세계는 무엇에 의해 움직이는가? 문명은 무엇에 의해 솟구치고 가라앉는가? 인간은 무엇을 향해 끌려가며, 무엇을 잃을 때 파괴되는가?
이 질문은 시대와 문화와 종교를 초월해 반복되었다. 그러나 인류는 그 답을 아주 가까이 바라보면서도 끝내 붙잡지 못한 채, 18~19세기에 도착한 뒤로 유난히 오래 머물러 있었다. 이 시기의 사유도,기술도 놀라울 정도로 정교하게 발전했지만, 그와 동시에 기묘한 한계를 품고 있었다. 이성은 스스로를 ‘빛의 왕좌’의 위치까지 끌어 올렸고, 인간은 자신이 세계의 중심이자 해석의 원천이라고 믿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 믿음은 오히려 세계의 깊이를 차차 얕게 만들었고, 인간의 깊이 또한 그 고유의 초월성을 잃어 버리게 되었는데 동시대 수많은 현자들의 정신적 몸부림에도 불구하고 인간과 그 초월적,인격적,실존적 빛 사이의 거리는 좁혀지지 않았다. 그와 동시에 인간이 차지하는 모든 분야에서는 눈부신 기술이 펼쳐지는 것 같았다. 그러나 실상을 곰곰히 따져 보면 연결은 이루어졌지만, 관계는 사라졌고 문명은 확장되었지만, 인간의 내면은 오히려 비어갔다는 것을 발견 하게 될 것이다.
총체적으로 지난 2세기 동안,결국 우리는 풍요 속에서 공허를 상속 받게 되었고, 속도 속에서 방향을 잃었으며, 자유 속에서 영혼의 상실을 경험했다는 것을 우리는 부정하지 못 할 것이다.
현대 문명이 잃어버린 것은 기술도, 정보도, 제도도 아니었다. 문명이 잃어버린 것은 ‘초월적인 임재’였다. 초월적이고 인격적인 그 무엇?인류가 철학의 언어로 ‘정신’이라고 불렀고, 종교의 언어로 ‘신’이라 불렀으며, 신비가들의 언어로 ‘빛’이라 불렀고, 거룩한 두루마리 속에서는 그것을 ‘태초의 숨결’이라 부른 그 초월적인 임재.
돌이켜 보면 인류는 아주 오래전부터 이 초월적인 임재를 감지해 왔었다. 고대의 선지자들, 사도들, 수도사들, 성철학자들, 심지어 근대의 철학자들조차도 그 흔적을 알게 모르게 스쳐 지나갔다는 것을 우리는 발견할 수 있다. 그러나 이 초월적인 임재는 어느 순간부터 사유의 중심에서 사라졌고, 인간은 그 빈자리를 자의(恣意的)적으로 이성·과학·국가·시장·기술로 채우려고 달려들었다.
하지만 이 하층부의 대체물들은 상층부의 초월적인 임재의 자리를 대신할 수 없었다. 왜냐하면 임재는 세계의 바깥에서 세계를 조종하는 추상적 의지가 아니라, 세계 안으로 들어와 개인의 내면 성전에 거하며 역사를 움직이는 실제적 힘이기 때문이다. 헤겔은 이 초월적인 임재를 정신이라는 거대한 랜즈로 거의 보아냈으나, 임재와 정신을 이성이라는 언어를 통해 설명하려는 순간 그것을 잃어버렸다. 마르크스는 초월적인 임재 자체를 삭제해버리고 정신 없는 변증법을 남겼으며, 그 사유는 소련과 그의 종속 국가들과 같은 ‘영혼 없는 문명’을 낳았다. 아널드J. 토인비는 문명의 패턴을 보았으나 그 패턴의 원천을 보지 못했다. 현대 철학은 초월을 의심하다가 세계의 깊이를 잃었고, 현대 과학은 물질을 분석하다가 초월적인 임재로만 해석 가능한 존재의 이유를 결코 찾지 못했다.
그 결과 인류는 지금, 기술은 폭발적으로 발전하지만 사유는 19세기의 높이에 갇혀버린 기묘한 병목 상태에 서 있게 되었다. 우리는 더 많이 알고 더 멀리 가고 더 빠르게 움직이지만, 우리의 내면은 풍요를 잃고 더는 깊어지지 못하고 있다. 왜냐하면 문명은 지식으로가 아니라 초월적인 임재의 회복으로만 깊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임재는 더 이상 국가나 제국이나 교회나 집단의 독점물이 아니다. 초월적인 임재는 정결케 된 개인의 내면 성전에 거하며, 그 개인이 또 다른 개인과 연결될 때 새로운 문명이 시작된다.
문명의 기원은 더 이상 국가가 아니라 ‘깨어난 한 사람’이다.초월적인 임재-초월적인 세계정신은 더 이상 이성의 구조가 아니라 ‘임재의 호흡’이다. 역사란 거대한 시스템의 운동이 아니라, 임재가 내면을 깨운 개인들이 서로 연결되며 만들어내는 살아 있는 네트워크로 보아야 할 것이다.
나는 바로 이 초월적인 임재의 귀환을 말하려 한다. 더는 설명되지 않던 문명 흐름의 비밀, 왜 인간의 내면이 문명의 미래를 결정하는지, 왜 이성이 멈춘 자리에 임재가 다시 돌아와야 하는지, 왜 인류는 지금 이 전환의 문턱에 서 있는지를 파헤쳐 보려고 한다.
18~19세기 사유의 고원에서 멈춘 세계를 다시 움직이게 하는 힘은 오직 초월적인 임재 뿐 이다. 그리고 그 임재가 개인 안에 성전을 세울 때, 문명은 다시 숨을 쉬기 시작한다. 나는 여러분과 함께 이 긴 여정을 통하여 그 ‘태초의 숨’의 정체를 밝히고, 그 숨이 열어갈 새로운 세계의 형태를 보여주려 한다. 임재적 세계정신. 이것이 인류가 오랫동안 보았으나 끝내 붙잡지 못한, 그러나 이제야 다시 이해해야만 하는 세계의 진짜 중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