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우구스티누스 은총론 III
율리아누스 논쟁 제1권
1. 「혼인과 정욕」
서양 고중세를 거쳐 현대에 이르기까지 있었던 위대한 사상가들의 논전들 가운데 제일 오래 갔고 제일 격렬했고 그 토론 주제가 당대와 후대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논쟁이 그리스도교의 가장 저명한 교부 아우구스티누스(Aurelius Augustinus: A.D.354~430)가 당대 수도승 펠라기우스(monachus Pelagius: ca.354~ca.418)와 벌인 소위 ‘펠라기우스파 논쟁’일 것이다. 아우구스티누스의 저술만도 열여섯 권이 남아 있다.
서구사상사에서 그리스-로마 문화를 통칭하는 ‘헬레니즘’과, 신구약성서를 주축으로 한 그리스도교 문명을 일컫는 ‘헤브라이즘’을 종합한 인물로 평가받는 아우구스티누스는, “나는 어려서부터 잔에 담긴 한 잔의 물을 보면 바다를 생각하였다.”고 실토한대로, 사멸하는 유한자 인간이 영원한 생명, 무한한 행복, 절대 진리를 추구하는 생래적 충동을 관찰하면서, 헤브라이즘이 전수해준 ‘신의 모상(imago dei)’이라는 개념은, ‘신을 포괄하는 인간 존재(homo capax dei)’라는 정의를 가리킨다고 풀이한다.
로마인다운 아우구스티누스의 실존주의는, 개인의 인생과 인류 여정에 음울하게 점철된 고苦와 죄罪의 실재에서 인류가 대신적對神的이고 역사적歷史的인 책임을 공유한다면 단일 인류가 시원부터 승계하고 악화하는 ‘원죄原罪’라는 신화에 착안한다.
그런 연대감은 개인적으로 집단적으로 자행하는 윤리악과 사회악에서 탈출하는 구원救援의 문제에 부딪치고, 그리스도 예수가 인류사를 창조주의 의지와 피조물 의지가 스텝을 밟는 구세사救世史(Shall we dance?)로 풀어 보이면서, 아우구스티누스는 신의 은총恩寵과, 인간의 신앙信仰에 시선을 집중한다. 자기 청년시절의 정신적 도덕적 방황, 로마 제국의 붕괴를 목전에 두고서 인간의 도덕적 집단적 구제 내지 발전은 하느님이 인류와 연대하는 은총恩寵에 비중을 둔다는 타력구원他力救援으로 기울었다.
그 대신 영국인 실증주의자 펠라기우스는 스토아 철학까지 표방하면서 “인간은 선과 악 둘 다 가능한 존재(boni ac mali capax)이고, 인간은 자기가 원하는 존재가 되도록(esse, quod velit) 소명 받았다고 주장하면서, 만약 인류 지성이 ‘믿음으로만(sola vide)’, ‘은총으로만(sola gratia)’이라는 피동성으로 기울 경우, 그리스도가 영감을 펴는 사회(Christentum)의 역사적 진로(amor munid)는 어찌되느냐는 의문을 제기한다. 현대적으로 풀면 Warum es ist so schwer die Welt zu lieben?(H.Arendt)이라는 질문이 된다.
이 논쟁서들을 읽는 독자라면, 종교인답지 못하게 인간을 초인(Übermensch)으로 보았다고 일찌감치 이단자로 분서갱유焚書坑儒 당한 펠라기우스는 “사람이 무엇이기에 이토록 돌보아 주십니까?” 라던 종교 시인의 물음(시편 8편)에 “신들보다 조금만 못하게 만드시고 영광과 존귀의 관을 씌워 주셨습니다.”라는 해답에 눈길을 주었다면 아우구스티누스 역시 “사람의 아들이 무엇이기에 그를 귀하게 여기시나이까?” 묻고서는 “사람은 허무와 비슷한 것, 그의 날들은 그림자처럼 지나가나이다.”(시편 143편)라는 탄식을 우리 귀에 남길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