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스타브 플로베르의 『보바리 부인』
1857년 프랑스 문단에 던져진 하나의 폭탄이 있었다. 귀스타브 플로베르의 『보바리 부인』이었다. 출간 직후 풍기문란 혐의로 재판에까지 회부되었던 이 작품은 역설적으로 그 논란 덕분에 세기를 넘어 살아남은 불멸의 고전이 되었다. 한 여성의 불륜과 파멸을 그린 이야기가 왜 168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세계 문학의 정전으로 읽히는 걸까. 그것은 이 작품이 단순한 스캔들 이상의, 인간 욕망의 본질을 꿰뚫는 거울이기 때문이다.
플로베르는 이 작품을 쓰기 위해 무려 5년이라는 시간을 바쳤다. 하루 12시간씩 책상 앞에 앉아 한 문장 한 문장을 조각하듯 다듬었고, 때로는 하루 종일 고민해서 겨우 한 페이지를 완성하기도 했다. 실제로 일어난 의사 부인의 자살 사건에서 영감을 받았지만, 플로베르는 단순한 사건 재현을 넘어 인간 심리의 가장 깊은 곳까지 파고들었다. 주인공 엠마의 자살 장면을 쓰면서 실제로 구토를 했다는 일화는 그가 얼마나 인물과 하나가 되어 창작했는지를 보여준다. "보바리 부인은 나 자신이다"라는 그의 고백은 허언이 아니었다.
부유한 농가의 딸로 태어난 엠마는 수녀원에서 낭만주의 소설을 탐독하며 화려한 사랑과 삶을 꿈꾼다. 평범한 시골 의사 샤를 보바리와 결혼하지만, 단조로운 일상과 권태로운 결혼 생활은 그녀를 질식시킨다. 소설 속 주인공처럼 열정적인 사랑을 갈구하던 엠마는 바람둥이 지주 로돌프, 젊은 서기 레옹과 차례로 불륜에 빠진다. 하지만 새로운 사랑도 곧 권태로 변하고, 사치와 빚으로 파탄에 이른 엠마는 결국 비소를 먹고 처참하게 죽는다. 남겨진 남편 샤를은 아내의 불륜을 알고도 그녀를 원망하지 않고, 아내의 머리카락을 손에 쥔 채 조용히 생을 마감한다.
이 작품의 진정한 혁명은 줄거리가 아니라 서술 방식에 있다. 플로베르는 작가의 주관적 판단을 철저히 배제하고, 마치 과학자가 표본을 관찰하듯 인물들을 냉철하게 묘사했다. 엠마의 불륜을 도덕적으로 비난하지도, 낭만적으로 미화하지도 않았다. 다만 한 여성이 왜 그런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는지, 그 과정에서 어떤 심리적 변화를 겪었는지를 정밀하게 보여주었을 뿐이다. 농업품평회 장면에서 로돌프의 사랑 고백과 참사관의 연설이 교차되며 사랑의 언어와 정치적 수사가 본질적으로 같은 공허함을 드러내는 구성은 문학사적으로 혁신적이었다. 이것이 바로 프랑스 사실주의 문학을 완성시킨 플로베르의 위대함이다.
『보바리 부인』은 단지 19세기 프랑스 시골 마을의 이야기가 아니다. 현실에 만족하지 못하고 끊임없이 더 나은 무언가를 꿈꾸는 것, 사랑에 열광했다가 환멸을 느끼는 것, 물질적 욕망에 사로잡히는 것은 21세기를 사는 우리에게도 낯설지 않다. SNS를 통해 타인의 화려한 삶을 들여다보며 자신의 일상에 불만을 느끼는 현대인들에게 '보바리즘'은 여전히 유효한 개념이다. 엠마가 소설 속 주인공처럼 살고 싶어 했듯, 우리도 끊임없이 현실 너머의 환상을 쫓고 있지 않은가.
이 작품을 읽는다는 것은 거울을 들여다보는 일이다. 우리는 엠마를 통해 우리 자신의 욕망과 환멸, 권태와 갈망을 발견한다. 플로베르가 한 문장 한 문장에 혼을 불어넣어 완성한 이 작품은 시대를 초월한 인간 보편의 이야기로,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 곁에서 숨 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