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속이 없는 주말 늦잠이 간절한 눈을 비비며 지하철에 올라탄다. 집에서 세 정거장이 떨어진 여의도로 향하는 길이다. 평일이면 사람이 파도를 이루는 여의도이지만 주말 아침은 서울에서도 손에 꼽을 정도로 고요함을 자랑하는 곳이다. 차분한 거리를 지나 카페에 들어서면 가벼운 인사와 함께 독서 모임이 시작된다. 특별할 것 없는 주말 오전의 풍경, 처음 이 모임에 참여했을 때만 해도 그저 더 자주 책을 읽고 싶다는 단순한 마음이었는데 어느 순간부터 그 자리가 내 일상에 작은 변화를 계속 만들어내고 있다.
서울이라는 바쁜 도시에서 저마다의 일들로 바빴던 우리는 커피 한 잔, 책 한 권으로 둘러 앉는다. 서로 하는 일도, 관심사도, 읽는 책도, 삶의 배경도 참 다양하다. 어떤 사람은 과학 이야기를 열정적으로 풀어내고 또 어떤 사람은 역사 속 인물들에 대해 마치 직접 본 것처럼 생생하게 설명한다. 나는 평소 잘 읽지 않던 분야의 책도 그들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나도 한 번 읽어볼까?’ 하는 마음으로 여러 책 들을 읽게 된다. 그렇게 한 권, 또 한 권 읽다 보니 내가 알던 세계의 범위가 꽤 넓어졌다는 걸 어느 순간 깨닫게 된다. 관심이라는 건 이렇게 누군가의 말 한마디, 책 한 권으로도 자연스레 옮겨오는구나 싶었다.
가끔은 마음 맞는 사람들끼리 따로 모여 글쓰기 모임을 하기도 했다. 평소 관심은 있지만 쉽게 이어나가지 못한 글쓰기를 함께 할 때는 꾸준히 해 나갈 수 있었다. 처음엔 내 글이 어색하기도 하고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막막할 때도 있었지만 신기하게도 시간이 지나면서 내가 조금씩 변하고 있다는 게 느껴졌다. 누군가 꾸준히 글을 써오는 모습을 보며 ‘나도 해야지’ 하고 노트북을 여는 날이 많아졌고 그 과정에서 내가 몰랐던 나를 발견하기도 했다.
돌아보면 커다란 목표나 결심이 있었던 건 아니다. 곁에 있는 사람들의 모습이 내 안으로 슬며시 스며들어 변화를 만들었다. 누군가의 호기심과 관심, 혹은 습관과 꾸준함이 옮겨왔다. 성장은 그런 식으로 어느 순간 슬그머니 옮겨오는 것 같다. 우리의 성장은 옮는다. 나도 모르게 받아들였던 어떤 기운이 내 안에서 또 다른 방향으로 이어지고, 그게 다시 내 삶을 조금씩 다르게 만들어 간다.
그래서인지 주말 아침, 책과 사람들이 있는 이 자리에서 나는 늘 편안한 동시에 묘한 기대감 같은 것을 느낀다. 나의 변화는 결국 혼자 만든 게 아니라, 함께 있는 사람들이 조금씩 건네준 에너지의 결과라는 것을 알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언젠가는 내 안에서 일어난 이 작은 변화들도 누군가에게 전해져 또 다른 움직임을 만들지도 모른다. 그런 생각을 하면 자연스럽게 글을 쓰고 싶어지고, 또 새로운 책을 펼치고 싶어진다.
조용히, 그러나 확실하게 이어지는 이 흐름 속에서 나는 여전히 성장하는 중이다. 그리고 그 성장은 오늘도 누군가의 옆에서 천천히 옮아 가며 또 새로운 방향을 찾아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