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 「밑줄 친 얼굴」은 읽는다는 행위가 얼마나 깊은 상처이자 다정한 생의 방식인지를 보여주는 기록이다. 김정배의 시 속에서 ‘읽는다’는 것은 단지 눈으로 문장을 따라가는 일이 아니다. 그것은 세상을 향해 자신을 열어 보이는 일, 그리고 그 안에서 자신을 조금씩 소멸시키는 일이다. 이 시집의 인물들은 모두 어딘가에서 불타고, 지워지고, 밑줄 그어진다. 그러나 그 상처의 자리에서 그들은 살아 있다는 증거를 얻는다. 그렇게 한 줄 한 줄, 인간은 자신을 읽히는 존재가 된다.
이 시집의 세계는 어둡지만, 어둠의 표면은 따뜻하다. 「금서」에서처럼 금지된 문장을 반복해 읽는 이들은 결국 자신을 잃어버리지만, 그 잃음은 단지 소멸이 아니라 존재의 방식이 된다. 기억의 밑줄 아래에서 인물들은 서로를 더듬고, 다시 연결된다. 「도미노의 법칙」에서의 쓰러짐과 「돌멩이」의 견딤, 「위대한 정오」의 빛과 그림자는 결국 한 인간의 생이 얼마나 유약하면서도 지속적인지를 보여준다.
「밑줄 친 얼굴」의 시들은 세상을 직시하지 않고서는 쓸 수 없는 문장들이다. 그러나 그 직시는 냉혹하지 않다. 시인은 “읽지 않아도 되는 얼굴을 해독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을, 무너진 문장 사이에서 여전히 웃음과 숨을 찾는 사람들을 따뜻한 시선으로 포착한다. 그래서 이 시집은 절망의 기록이 아니라, 읽고 또 읽히며 살아가는 인간의 존엄에 대한 조용한 경의다.
읽는다는 일은 결국 사랑하는 일과 닮아 있다. 타인의 문장을 이해하려는 시도 속에, 우리는 언제나 자기 얼굴의 밑줄을 다시 긋는다. 이 시집은 그 밑줄이 결국 서로를 기억하게 하는 표식임을, 우리 모두가 누군가의 밑줄 친 얼굴로 남는다는 사실을, 잔잔하게 일깨워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