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체 지금까지 뭐 한 거지?" 잔고를 들여다볼 때마다, 이력서를 쓸 때마다, 또래의 소식을 들을 때마다 튀어나오는 말이다. 열심히 살았는데 손에 쥔 것이 없는 것 같은 그 허탈함. 이 책은 그 감정에서 시작한다.
시간은 길이로만 측정되지 않는다. 삶에는 '밀도'라는 또 다른 축이 있다. 물이 끓기 직전 온도가 멈춘 것처럼 보여도 에너지는 맹렬히 축적되는 잠열의 구간처럼,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는 것 같은 그 시간들은 사실 내공을 극한의 밀도로 압축하는 과정이다. 불문학에서 AI 번역의 최전선까지, 겉보기엔 삽질 같았던 궤도 수정의 날들을 통해 깨달은 것이 있다. 헛된 시간은 없었다는 것. 다만 아직 그 의미를 몰랐을 뿐이라는 것.
지금 성과가 보이지 않아 불안한 사람에게, 열심히 사는데 허탈한 사람에게, 나이만 먹고 있는 것 같아 서글픈 사람에게 건네는 말. 밀도 높은 시간은 결코 배신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