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에서 번역은 언제나 생존이었다. 고조선의 통역관이 낯선 언어 앞에서 말을 가다듬던 순간부터, 조선의 이름 모를 천주교 신자가 박해를 무릅쓰고 교리서를 한글로 옮기던 밤까지 — 이 책은 수천 년에 걸친 한국 번역의 역사를 한 편의 이야기로 엮어낸다. 단순한 언어 기술의 역사가 아니라, 이 땅의 사람들이 낯선 세계와 어떻게 대화하고, 싸우고, 화해하며 자신들의 문명을 쌓아왔는지에 관한 이야기다. 구결과 이두에서 사역원의 역관, 원효의 불경 해석, 세종의 훈민정음, 그리고 서학의 파도까지 — 번역 없이 한국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