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란츠 카프카 『성(Das Schloss)』
어느 겨울밤, K.라는 이름만 가진 한 남자가 눈 덮인 마을에 도착한다. 그는 자신을 마을 위 언덕에 우뚝 솟은 '성'에서 임명한 측량기사라고 주장하지만, 마을 사람들은 그를 의심의 눈초리로 바라볼 뿐이다. 성은 분명 보이는 곳에 있다. 그러나 걸어가면 길은 기이하게도 성에서 멀어지고, 전화를 하면 답변은 모호하며, 관료들은 서로 모순되는 말을 되풀이한다. K.는 자신의 존재를 인정받기 위해 분투하지만, 성은 끝내 그 문을 열지 않는다.
『성(Das Schloss)』은 프란츠 카프카(1883~1924)의 마지막 장편소설이다. 1922년 1월, 체코의 산악 휴양지 슈핀들러뮐레에 도착한 날 밤부터 집필을 시작했으나, 결핵의 악화와 창작 의지의 소진 속에서 같은 해 9월 소설을 포기했다. 카프카는 1924년 세상을 떠났고, 소설은 문장 도중에 멈춘 채로 남았다. 친구 막스 브로트가 카프카의 유언 — 미출간 원고를 모두 소각하라 — 을 거부하고 1926년 사후 출간함으로써 이 미완의 걸작은 비로소 세상의 빛을 보았다.
독일어 원제 'Das Schloss'는 '성(城)'과 '자물쇠(鎖)'라는 이중적 의미를 지닌다. 이 소설은 말 그대로 성에 관한 이야기이면서, 동시에 교착 상태에 관한 이야기다. K.가 성에 도달하려 할수록 그는 점점 더 깊은 미로 속으로 빠져들고, 관료적 시스템의 불투명한 벽 앞에서 무력해진다. 성은 도달할 수 없는 목표, 접근 불가능한 권위, 의미를 찾으려는 인간의 끝없는 탐색 그 자체를 동시에 상징한다.
그러나 『성』은 단순한 관료제 비판에 머무르지 않는다. K.는 성의 고위 관료 클람의 전 연인 프리다와 사랑에 빠지고, 전령 바르나바스의 가족과 깊이 얽히며, 성의 부당한 요구를 거부한 아말리아의 비극적 운명에 가슴 아파한다. 카프카의 다른 작품과 달리, 이 소설의 주인공은 타인과 사랑을 포함한 깊은 관계를 맺는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소통의 좌절과 인정의 거부가 주는 고통이 더욱 절실하게 전해진다.
막스 브로트에 따르면, 카프카가 구상한 결말은 이러했다. K.는 마을에 계속 머물다가 임종을 맞이하고, 죽음의 자리에서야 비로소 성으로부터 거주 허가를 통보받는다. 평생을 바쳐 추구한 인정이 죽음의 순간에야 내려지는 이 잔혹한 아이러니는, 카프카 문학의 본질을 한 장면에 응축한다.
토마스 만은 이 소설을 신적 은총과 관료 국가가 만나는 상징적 알레고리로 읽었고, 시몬 드 보부아르는 실존주의의 선구적 작품으로 평가하며 "카프카는 우리 자신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고 말했다. 소설이 미완성이라는 사실은 역설적으로 그 주제적 완결성을 강화한다. K.의 여정에 종착점이 없듯, 이 소설 역시 끝나지 않는다. 형식 그 자체가 곧 내용이 되는 것이다.
『성』은 부조리한 세계 앞에 선 개인의 고독, 의미를 향한 멈출 수 없는 갈망, 그리고 도달할 수 없는 것을 향해 걸어가는 인간 존재의 숙명을 그린 20세기 문학의 기념비적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