헝가리 역사를 쓰면서 마자르족의 출발점을 좇다 보면, 시선은 자연스럽게 동쪽으로 향하게 된다. 마자르족이 카르파티아 분지로 말을 타고 오기 전, 그들은 오늘날 카자흐스탄과 러시아 남부 스텝 지대를 누비며 살았다. 그 스텝의 후예들이 유럽의 한복판에 뿌리를 내린 것처럼, 카자흐스탄은 유라시아 유목 문명의 가장 오래된 무대 중 하나다.
카자흐스탄은 세계에서 아홉 번째로 넓은 나라다. 그 광대한 땅의 대부분은 스텝—끝없이 펼쳐지는 초원과 반사막. 이 땅에서 수천 년간 유목민들이 말과 함께 살았다. 흉노, 돌궐, 몽골, 카자흐—이름은 바뀌었지만 스텝을 달리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끊이지 않았다.
카자흐 민족이 하나의 이름 아래 뭉친 것은 15세기다. 카자흐 칸국의 건국—그것은 단순한 국가 성립이 아니라 수백 년 유목 전통의 결정(結晶)이었다. 이후 러시아 제국의 팽창, 소련의 집단화와 대기근, 핵실험의 상처, 1991년 독립—카자흐스탄은 20세기만으로도 한 권의 책이 필요한 역사를 압축적으로 살아냈다.
한국 독자들에게 카자흐스탄은 낯선 나라일 수 있다. 그러나 스텝을 달리며 정체성을 지켜온 유목민의 이야기, 강대국 사이에서 살아남은 소국의 지혜, 억압 속에서도 꺼지지 않은 민족의 불꽃—이 이야기들은 우리의 경험과 멀지 않다. 이 책이 그 연결의 통로가 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