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트해 동쪽 끝, 핀란드만이 북쪽을 가르고 라트비아와 남쪽으로 국경을 맞대는 이 땅에 에스토니아가 있다. 면적 약 45,000제곱킬로미터, 인구 130만 명의 작은 나라. 그러나 이 작은 나라의 역사는 결코 작지 않다. 9천 년의 인간 거주 역사, 수백 년에 걸친 외세 지배, 두 번의 독립과 한 번의 재독립—이 좁은 땅 위에서 펼쳐진 이야기들은 유럽 역사 전체를 압축해서 보여준다.
나는 왜 에스토니아의 역사를 쓰는가. 솔직히 말하면 처음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작은 우연 때문이었다. 어느 겨울날 유튜브에서 '노래 혁명'의 다큐멘터리를 보게 되었다. 탈린 노래마당에서 30만 명이 모여 금지된 국가를 부르는 장면에서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흘렀다. 총을 들지 않고 노래로 독립을 이룬 민족이 있다는 것이 믿기지 않았다. 그 이후 에스토니아에 관해 읽기 시작했고, 읽을수록 이 나라의 이야기가 우리에게도 낯설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큰 나라들 사이에 낀 작은 나라의 운명, 자신의 언어와 문화를 지키려는 끈기, 강대국의 폭력 앞에서도 꺾이지 않는 정체성, 그리고 마침내 찾아오는 자유. 에스토니아 역사의 이 주제들은 보편적 울림을 갖는다. 어쩌면 한국인들이 특별히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인지도 모른다.
이 책은 에스토니아 역사의 입문서다. 고대 발트해 연안에 처음 사람이 정착한 이야기부터 오늘날 디지털 국가로 세계를 이끄는 에스토니아까지, 9천 년의 여정을 따라간다. 전문적 역사서를 쓰려고 한 것은 아니다. 독자들이 한 나라의 이야기를 통해 역사의 큰 흐름과 작은 디테일을 함께 느낄 수 있기를 바라며 썼다. 인물의 일화, 사회의 질감, 문화의 숨결을 놓치지 않으려 했다.
세계의 역사를 우리말로 옮기는 작업을 몇 년째 해왔다. 폴란드, 슬로바키아, 인도, 그리고 이번 에스토니아까지. 이 작은 나라들—아니, 크기는 상관없다. 어느 나라의 이야기도 작지 않다—의 이야기를 한국 독자들에게 전할 수 있어 기쁘다. 역사는 결국 사람들의 이야기이고, 사람들의 이야기는 국경을 넘어 서로에게 말을 건다.
에스토니아 민속학자 야콥 후르트의 말처럼, "우리가 큰 민족이 될 수 없다면, 위대한 민족이 되어야 한다." 이 책을 읽은 독자들이 에스토니아라는 이름을 듣고 친근함을 느낄 수 있다면, 그리고 작은 나라의 끈질긴 생존과 창조의 이야기에서 어떤 힘을 얻을 수 있다면, 이 책은 제 역할을 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