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렌 켈러의 자서전과 에세이
이 책은 헬렌 켈러가 스물세 살에 쓴 자서전 《내가 살아온 이야기》와 53세에 발표한 에세이 《사흘만 볼 수 있다면》을 한 권에 담았다. 두 편 사이에는 30년의 시간이 놓여 있다. 그러나 그 간격이 오히려 이 책을 더욱 풍요롭게 만든다. 젊은 헬렌의 목소리가 고통 속에서 언어와 세계를 발견해 가는 생생한 성장의 기록이라면, 원숙한 헬렌의 목소리는 긴 삶의 끝에서 조용히 길어 올린 지혜의 샘물이다.
헬렌 켈러를 모르는 사람은 없다. 그러나 그녀가 직접 써 내려간 글을 처음부터 끝까지 온전히 읽어 본 사람은 드물다. 영화나 요약본으로 줄거리를 아는 것과, 그녀의 문장을 한 줄 한 줄 음미하며 읽는 것은 전혀 다른 경험이다. 자서전은 줄거리만 파악하고 끝낼 책이 아니다. 시력과 청력을 잃었기에 오히려 세계를 더 예민하고 풍부하게 감각한 한 인간이, 소나무 껍질의 거칠음과 이슬에 씻긴 장미 꽃잎의 부드러움, 천둥이 오기 전 대기에 배어드는 낯선 냄새를 손끝과 코끝으로 받아들이며 써 내려간 문장들은 그 자체로 하나의 아름다운 문학이다. 읽다 보면 무심하게 바라보던 주변의 풍경과 사람들이 새롭게 보이기 시작한다. 잃어버렸던 감사와 용기와 삶에 대한 열정이 조용히 되살아난다.
에세이 《사흘만 볼 수 있다면》은 더욱 짧고 담담하다. 만약 기적적으로 사흘 동안 볼 수 있게 된다면 무엇을 보겠느냐는 질문에 헬렌은 화려한 웅변이나 눈물 어린 호소 없이, 마치 여행 계획을 세우듯 조용히 답한다. 사랑하는 이들의 얼굴을 보고, 숲속을 걷고, 박물관에서 인류의 역사를 보고, 평범한 사람들의 일상을 바라보겠다고. 그 소박한 바람을 읽는 동안 독자는 자신이 날마다 얼마나 많은 아름다움을 보지 않고 살아가는지를 새삼 깨닫게 된다. 빛 한 줄기, 소리 하나를 단 하루도 경험하지 못한 채 살아온 사람의 간절한 꿈이 담담하게 전해질 때, 그 감동은 어떤 화려한 문장보다 깊고 오래 남는다. 《리더스 다이제스트》가 이 글을 '20세기 최고의 에세이'로 선정한 것은 이유가 있다.
두 편을 함께 읽을 때 비로소 헬렌 켈러라는 한 인간의 온전한 초상이 완성된다. 지금, 이 책을 펼치는 것은 단순히 한 위인의 삶을 아는 일이 아니다. 내일 눈이 멀 것처럼 오늘 눈을 사용하고, 내일 귀가 들리지 않게 될 것처럼 오늘 소리를 듣는 법을 배우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