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이 사라지면 세계도 사라지는 것일까?
이 세계를 떠받치고 유지하는 것은 무엇이고 누구인가?
한 가족의 노동이동사를 통해 좇는 광산, 폐광, 폐광 이후의 이야기이자, 변두리/경계/아래로부터 채굴해온 목소리들
“다 죽었어”: 사라질 수 없는 세계, 노동, 삶을 채굴하기
예전에는 “개도 만원짜리를 물고 다녔다”던 곳, 일자리와 돈이 필요했던 이들이 끝없이 모여들던 곳이었던 한국의 광산들은 90년대 이후 빠르게 위축되었다. 한국사회와 광산은 이제 동시대의 것으로 연결되지 않는다. 많은 이들에게 ‘광산’이니 ‘광산노동자’니 하는 것, 광산에서의 노동과 삶이라는 것은 대개 피상적으로 그려지거나 재현되곤 한다.
당신은 ‘막장 인생’, ‘막장 드라마’와 같은 말을 들었을 때 어떤 기분이 드는가. 이 말에 위화감을 느끼지 않은 사람이 여럿일 테지만, 그 말을 듣는 순간 속으로 깜짝 놀라거나 씁쓸한 기분을 느끼는 이들도 있다는 것을 생각해본 적이 있는가. 막장을 이미지가 아닌 구체적인 일터이자 현장으로 기억하고 있거나, 여전히 막장에서 일하고 있는 이들이 지금 여기에서 우리와 함께 살아가고 있지만, 이 사회는 누군가의 일터와 현장을 비하의 의미로 사용하는 데도 전혀 거리낌이 없다. 그만큼 그 산업과 그 안의 노동이 사회적으로 망각되고 비가시화되었기 때문일 터다. 한국에 가행 중인 광산이 300여 곳이 있고, 기계화된 작업을 하고 있으며, 그 광산은 탄광이 아니지만 아직도 광산노동자는 ‘헤드랜턴을 착용하고 곡괭이를 들고 얼굴에 검댕을 묻힌 남성’으로 재현하는 데 거리낌이 없다(한 정치인은 실제 탄광 노동자보다도 더 심하게 얼굴에 검댕을 묻힌 얼굴을 언론에 제공하지 않았던가). 심지어 광물이 여전히 우리의 구체적 일상과 연결되어 있음에도 그러하다.
개도 만 원짜리를 물고 다녔다던 곳에 대한 이야기는 비단 광산촌만의 이야기는 아니다. 멀지 않게는 조선소에 기대고 있던 거제, 거대한 자동차 공장이 있던 평택에서도 들려왔던 말이지 않은가. 그리고 기술과 자본, 산업의 전환과 이동, 위축에 따라 쓰고 버려지는 수많은 노동과 노동자의 삶에 무심한 것 역시 바뀌지 않고 반복되어온 이야기다. 산업이 사라지면, 그 산업에 속했던 노동과 삶도 모두 사라지는 것일까? 산업이 사라진다고 그 안의 사람도 사라지는 것일까?
국내 유일의 자철광인 양양광업소에서 일했고, 그곳의 첫 민주 노조 위원장이자, 또한 광업소가 폐광할 때의 마지막 노조 위원장의 자녀인 저자는 코로나19로 인한 팬데믹이 한창이던 2021년 고모의 사망 절차를 진행하다 자신의 출생지가 실제 자신의 출생지가 아닌 아버지가 일했던 양양광업소가 있던 ‘장승리’로 기재된 것을 알게 되며 뒤늦은 질문을 아버지에게 꺼냈다. 그때 그 광산 사람들은 다 어떻게 지내느냐고. 돌아온 대답은 이것이었다. “다 죽었지.” 누군가가, 어딘가가 과잉대표되어오는 동안 망각되고 지워진 얼굴과 목소리들이 있다. 어린 시절, 희미한 목격자였던 저자는 이제 구체적인 기록자가 되어 광산에 깃들었던 목소리를 채굴하고 골라 이 책에 담았다. 책의 제목인 ‘쇳돌’은 저자의 가족이 기대어 살았던 철광산 양양광업소의 광산노동자들이 캐고 고르던 철광석의 우리말이자, 그 광산노동자들 자체이자 그들의 노동이며, 저자가 채굴하고 골라낸 그들의 목소리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