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시 – 독일 작가들과 노자 『도덕경 (道德經)』
- 독일 작가들 작품 중심에서 본 독역 『도덕경』 수용의 실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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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는가? 성경 다음 『도덕경』이 최다 언어로 번역된 사실을
독어로 번역된 『도덕경』은 현재 100여 본들로 알려져 있지.
벨기에 출신 선교사 라틴어로 번역했었다네: 『도덕경』을
1720년 서구 최초 예수회 소속 선교사 노엘라스가 번역했지.
하나, 참조했다네: 1842년 줄리앙 번역한 불어본 『도덕경』을
폰 슈트라우스와 플렌커너는 1870년 『도덕경』을 독역했지.
하여, 일반 독자들은 감히 가까이 하지 못했다네: 『도덕경』을
첫 독역자들이라 수많은 해설을 곁들인 학문적 번역이었지.
한 세대가 흐르고 20세기 문턱에서 놀라운 일이 있었네.
1899년 『도덕경』 내용 누구나 독어로 쉬이 이해하도록 번안했다.
25살 피들러 누구나 쉬이 읽도록 필사본 남긴 채 요절했다네.
아는가? 이러한 상태로 독역 『도덕경』 밀레니엄 마주했다.
때마침 동양 사상과 문학에 관심 보이며 활발하게 번역되었네.
브레히트 이를 “르네상스, 그건 동양 고전의 소생”이라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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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초반, 피들러 노자 격언에 따라 다수 번역(안)들 출간되었지.
루터역 성경 필적할 만큼, 그의 『도덕경』 새로운 창작에 속했기 때문이야.
1903년 중국학자 울아르는 운문식 격언으로 독자들 마주했던 게야.
인젤 출판사 출간 단행본∙문고판 『도덕경』 당시 독일 독자들 사로잡았지.
올아르 『도덕경』으로 독자 저변을, 빌헬름 대량 독자들 확보했지.
바로 1911년 출간한 『노자 도덕경. 의미와 삶에 대한 고전』인 게야.
물론 신학교수 그릴은 1910년 다시 학문적 『도덕경』 출간한 게야.
하나, 첫 두 독역 『도덕경』처럼 다수 독일 독자들에게 다가가진 못했지.
인도 선교사 헤세 아버지도1914년 『노자, 기독교 이전 진리의 증인』을
보다 손쉽게 누구나 『도덕경』 소지하며 읽고 이해할 수 있게 하고자
1920년 시인 클라분트와 페트만도 출간했다: 『도덕경』을!
하여 종교사회학자 막스 베버 말처럼, 노자는 대세 철학자 되었다.
1920년 젊은 작가 브레히트도 처음으로 접했다: 노자 『도덕경』을!
제1차 세계대전 전후, 독일 지성인 온통 동양사상에 집중적으로 쏠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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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세는 인도 여행 떠나기 전 『도덕경』 출간에 즉각 반응 보였다.
1911년 뮌헨 신문에다 빌헬름 『노자 도덕경』 소개하고자 기고했지.
그는 서두에 그릴 교수와 올아르 『도덕경』 비교하기도 했지.
하여, 그의 『도덕경』 관심은 직∙간접적인 아버지 영향 통해서였다.
이처럼 독일 작가들 이미 독역된 『도덕경』과 밀접한 관련 속에 수용했다.
부버는 폰 슈트라우스 독역과 해설을, 되블린은 울아르 독역 참조했지.
베버는 폰 슈트라우스, 빌헬름 독역과 카루스 영역 『도덕경』 참조했지.
내용적으로 클라분트 폰 슈트라우스 『도덕경』 14장과 깊은 관련 있다.
하여, 주경민 빌헬름 독역 원전일 것이라는 당연성 배척하는 게야.
아무런 근거도 없이 브레히트 연구자들 그렇게 당연시 했듯 말이네.
그러한 연구자들 만용, 독역 『도덕경』 단지 한 권일 때만 가능한 게야.
살펴보세! 각 작가들 상이한 『도덕경』과 개념을 수용한 사실들 말이네.
하여 연구자들 무조건 노자 무위 (無爲)와 연관시키는 것도 무리야.
알잖은가? 브레히트 관심가진 걸: 단지 『도덕경』 전설과 노자의 친절에!
(2026년 4월을 맞으며, 독일 검은숲 언저리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