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수로 온 데에 거창한 이유는 없었다. 어떤 사람들은 큰 결심 끝에 도시를 떠난다고 한다. 도시의 속도가 더는 견딜 수 없어서, 자신을 잃지 않기 위해서, 다른 결의 삶을 살고 싶어서. 나의 이주에는 그런 원대한 결심은 없었다. 그저 어느 봄날, 새로운 곳으로 떠나고자 짐을 쌌을 뿐이다. 짐을 싸면서도 이게 정말 일어나고 있는 일인지 잘 실감하지 못했다. 그러나 짐이 다 싸이고, 트럭이 도착하고, 집의 문이 닫혔을 때, 결국 이루어졌다는 것을 알았다. 과감하게 익숙한 곳을 떠나는 일은 나에겐 늘 그렇게 이루어진다. 결심보다 행동이 먼저고, 실감은 나중에 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