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리 벨록 론디스의 소설 《하숙인》은 19세기 말 런던을 공포로 몰아넣었던 '잭 더 리퍼' 사건에서 영감을 받아 집필된 고전 서스펜스의 걸작입니다. 이 작품은 단순한 범죄 수사물을 넘어, 평범한 가정의 일상에 파고든 정체 모를 공포와 그 안에서 갈등하는 인간의 심리를 치밀하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이야기는 과거 상류층의 유능한 하인 출신이었으나 현재는 극심한 가난에 시달리는 로버트 번팅과 그의 아내 엘렌 번팅의 모습에서 시작됩니다. 이들은 저축한 돈을 모두 잃고 굶주림과 추위 속에 전당포를 들락거리는 비참한 처지에 놓여 있습니다. 한때의 자부심을 상징하던 가구들을 하나둘 팔아치우며 절망하던 어느 안개 낀 밤, 마치 구원자처럼 한 남자가 나타납니다.
자신을 '학자'이자 '과학자'라고 소개한 슬루스 씨는 번듯한 짐도 없이 작은 가방 하나만을 든 채 번팅 부부의 2층 방을 빌리겠다고 나섭니다. 그는 다른 하숙인을 받지 않는 조건으로 파격적인 선불금을 지급하며 부부의 경제적 구멍을 단번에 메워줍니다. 하지만 그는 밤에만 외출하고, 성경을 큰 소리로 낭독하며, 여성을 혐오하는 등 기이한 행동을 보입니다.
하숙인이 들어온 시점과 맞물려 런던 전역은 '복수자'라고 불리는 연쇄 살인마의 출현으로 발칵 뒤집힙니다. 범인은 술에 취한 여성을 잔인하게 살해한 뒤, 시신에 '복수자'라고 적힌 삼각형 종이를 핀으로 꽂아두는 기괴한 표식을 남깁니다.
번팅 부부의 집을 드나드는 젊은 형사 조 챈들러는 수사 상황을 부부에게 들려주는데, 그가 묘사하는 범인의 특징—안개 낀 밤의 야간 활동, 가방을 든 마른 신사, 고무창 신발—은 하숙인 슬루스 씨의 모습과 소름 끼칠 정도로 일치합니다. 아내 엘렌은 슬루스 씨의 방에서 발견된 붉은 액체(잉크 혹은 피)와 그의 기묘한 야간 외출을 목격하며 그가 살인마일지도 모른다는 끔찍한 의심을 품게 됩니다.
이 소설의 진정한 백미는 범인이 누구인지 밝혀내는 과정보다, 의심을 확신으로 바꿔가면서도 침묵을 지키는 엘렌 번팅의 심리 묘사에 있습니다. 엘렌은 슬루스 씨가 범인이라는 정황을 수없이 발견하지만, 그를 고발하는 순간 다시 찾아올 지독한 가난과 사회적 파멸을 두려워합니다. 그녀에게 슬루스 씨는 공포의 대상인 동시에, 자신들을 굶주림에서 구해준 '상냥한 신사'이자 '생계의 원천'이기 때문입니다.
독자는 엘렌의 시선을 통해 하숙인이 위층에서 서성이는 발소리, 계단을 내려오는 기척, 성경을 낭독하는 음산한 목소리를 함께 체험하며 극한의 서스펜스를 느낍니다. 가족 같은 조 챈들러가 수사망을 좁혀올수록, 하숙인을 보호하려는 엘렌의 기만과 공포는 극에 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