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원 무림은 '결백'이라는 이름 아래 암수와 독을 멸절시킨 정순함의 시대를 맞이했다. 그러나 그 투명한 빛의 이면에는 태생적으로 모든 것을 녹여버리는 독혈을 타고난 아이, 강혁의 비극이 숨겨져 있었다. 가문의 수치로 낙인찍혀 시체 구덩이에 던져진 강혁은 죽음의 문턱에서 자신의 저주받은 피를 무학으로 승화시킨 금기 무공 부식혈공을 완성하여 돌아온다.
명검이 거품을 내며 녹아내리고 정파 고수들의 기공막이 뚫려나가는 처절한 전장 속에서, 그는 검을 들지 않은 채 오직 자신의 선혈로 세상을 심판한다. 숭산의 높은 전각들이 무너지고 위선으로 가득 찬 강호의 질서가 산성 혈무에 녹아 사라지는 순간, 수라의 길을 걷는 사내의 진실한 투쟁이 시작된다. 이것은 영웅의 연대기가 아니다. 세상의 가식을 뿌리째 뽑아내기 위해 스스로 마물이 된 한 남자의 고독하고도 압도적인 파괴의 기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