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의 끝(The End of the Story)
고딕 소설과 위어드 픽션, 데카당스 문학의 매혹이 짙게 스며든 몽환적 단편이다. 작품은 1798년 프랑스풍 가상 지역 아브루아뉴를 배경으로, 폭풍 속에서 길을 잃은 젊은 법학도 크리스토프 모랑이 한 수도원에 도착하면서 시작된다. 학식 깊고 온화한 수도원장 일레르의 환대를 받게 된 그는, 수도원 비밀 서고에서 절대 읽어서는 안 되는 금단의 필사본을 발견한다. 그리고 그 순간부터 그의 운명은 서서히 현실 세계에서 멀어지기 시작한다.
필사본에는 오래전 폐허가 된 포스플람성과 인간을 유혹해 사라지게 만든 신비로운 여인 니케아에 관한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다. 니케아는 단순한 흡혈귀나 괴물이 아니다. 그녀는 고대 이교 세계의 마지막 아름다움처럼 묘사되며, 인간의 이성과 신앙조차 무너뜨릴 만큼 치명적인 황홀을 품고 있다. 크리스토프는 결국 폐허 아래 숨겨진 지하 세계로 내려가 그녀를 만나게 되고, 그곳에서 현실보다 더 아름답고 몽환적인 세계를 경험한다.
수도원장 일레르는 그 세계를 악마적 환영이라 경고하며 크리스토프를 구하려 한다. 작품은 끝까지 무엇이 진실인지 명확히 설명하지 않는다. 니케아의 세계는 정말 지옥이었는지, 혹은 인간이 끝내 포기할 수 없는 아름다움의 낙원이었는지는 독자의 해석에 맡겨진다. 《이야기의 끝》은 단순한 공포 이야기가 아니라, 구원과 유혹, 신앙과 욕망, 현실과 황홀 사이에서 흔들리는 인간 영혼의 비극적 초상을 그려낸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