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주받은 자(Anathema)
종교 심리 단편으로, 제도화된 교회 권위와 인간 양심의 충돌을 강렬하게 그려낸 작품이다. 이야기는 러시아 정교회의 사순절 예배를 배경으로 시작된다. 거대한 체구와 압도적인 목소리를 지닌 올림피 대부제는 교회의 명령에 따라 파문 의식을 집전하며, 수많은 이단자와 반역자들에게 “저주받을지어다”라는 선언을 반복한다. 그러나 그는 예배 직전 읽었던 레프 톨스토이의 작품 속 인간적 연민과 생명의 아름다움을 잊지 못한 채, 결국 톨스토이까지 저주하라는 명령 앞에서 깊은 양심의 위기에 빠진다.
작품은 장엄한 성당의 어둠, 촛불과 향내, 울려 퍼지는 전례문을 통해 러시아 정교회의 엄숙한 분위기를 생생하게 묘사하는 동시에, 그 화려한 의식 속에 숨어 있는 종교 권력의 폭력성과 형식주의를 날카롭게 드러낸다. 특히 올림피가 교회의 명령과 자신의 양심 사이에서 갈등하는 과정은 단순한 종교 풍자를 넘어 인간 영혼의 존엄과 자유를 묻는 비극적 드라마로 확장된다.
『저주받은 자』는 ‘파문”이라는 종교적 언어를 통해, 인간을 저주하는 제도와 인간을 이해하려는 마음이 어떻게 충돌하는지를 보여주는 작품이다. 쿠프린은 이 단편을 통해 진정한 신앙은 저주와 배제가 아니라 연민과 사랑 속에 존재한다는 메시지를 묵직하게 전달한다.